[허연의 책과 지성]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흉내낸 좀비다

허연 입력 2022. 9. 23. 20:30 수정 2022. 9. 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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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블룸 (1930~2019)
"독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다"
문학의 염결성 포기하지 않은 현대 문단의 독설가
"독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다."

학창시절 내 책상 앞에는 해럴드 블룸의 말이 붙어 있었다. 지금껏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살면서 이 말처럼 독서의 가치를 정확하게 단정적으로 설명해주는 문장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상황을 초월하지 못한다. 그런 인간이 유일하게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순간이 문학을 읽을 때다. 문학은 인간을 가보지 않은 세상, 살아보지 않은 시대로 안내하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상상력을 만나게 해준다. 문학은 지식을 알려주고 방향을 제시하며, 성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작은 인간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해럴드 블룸은 비평가다. 비평은 말 그대로 자기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야박하게 말하면 비평가는 편견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해럴드 블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지독한 편견이 주는 통쾌함을 만끽한다. 그가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비교한 글이 있다.

"'햄릿'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괴테를 말할 수 없이 괴롭혔다. 비할 데 없이 멋진 '파우스트' 2부는 셰익스피어, 특히 '햄릿'을 자주 패러디했다. 셰익스피어만큼 인간을 창조할 수 없었던 괴테는 파우스트를 포함한 인간의 표상을 무엇엔가 빗대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파우스트는 사실 햄릿과 나란히 놓고 보면 좀비에 불과하다. 괴테의 작품 속에는 셰익스피어가 숨어 있다."

'파우스트는 햄릿의 패러디'라고 일갈하는 해럴드 블룸은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예일에서 박사를 받았다. 평생 하버드대 뉴욕대 예일대 등에서 학생을 가르친 그는 다른 문학비평가들과는 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읽는 행위에 대한 인문주의적 성찰을 중시한다. 그는 문학을 정치 역사 등 문학 외적인 것으로 분석하는 시도들을 경멸했다. 그의 눈에 문학을 마르크스주의나 페미니즘, 신역사주의, 해체론, 상업주의 등으로 환원하는 자들은 문학의 배신자들이었다.

해럴드 블룸은 현대문학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그는 토머스 핀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 등을 가장 위대한 미국의 현대 소설가로 평한다. 반면 해리 포터와 스티븐 킹에 대해서는 잔인한 독설을 날린다.

"'해리 포터'는 완전 쓰레기다. 소설이나 문학이라는 단어를 붙여서도 안 된다. 그 속에서는 어떤 문학적 가치도 찾을 수 없다. 해리 포터 시리즈 붐은 한마디로 재앙이다."

"싸구려 모험소설이나 쓰는 작가(스티븐 킹)가 전미 도서상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문화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말초적 재미 이상은 찾아보기 힘든 가벼운 글들과 인물 하나 상황 하나 제대로 창조하지 못한 다큐들이 문학 행세를 하고 있는 한국 서점가를 보면서 해럴드 블룸 생각이 났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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