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근린궁핍화 정책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 0.75%포인트 인상) 여진이 이틀째 이어졌다. 2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42.31포인트(1.81%) 급락한 2290.00을 기록했다. 2300선이 무너진 것은 두 달여 만이고, 종가 기준으로는 거의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투자자에게는 ‘검은 금요일’이었다. 전날 13년 반 만에 14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은 0.4원 내린 1409.3원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증시 하락과 환율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고물가를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금리가 상승하면 시중에 돈이 줄어든다. 달러화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과 무역에서 기본 통화로 쓰인다. 달러가 감소하면 수요가 늘어나 강세를 띠는 것이다. 유로화나 엔화 같은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올해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킹달러’ ‘슈퍼달러’가 됐다. 지난해 말 1달러 가치는 1188.8원이었지만 지금은 19%가량 올라 1400원을 줘야 한다. 달러화 강세만큼 원화 가치는 떨어졌다.
킹달러는 미국 이외 국가를 곤경에 빠뜨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가격과 환율 상승에 따른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반면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아졌다. 최근 유럽에서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미국인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가 다른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미국도 안다.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웃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ur)’ 정책이라고 한다. 미국에만 유리하게 꿰맞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근린궁핍화 정책은 보복을 유발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규모를 축소시켜 결국 역효과를 낸다. 공범인 두 죄수가 자신만의 이익을 좇는 선택을 해 끝내 공멸한다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비슷하다. 연대와 협력처럼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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