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돈을[엄길청의 이코노베이션](18)

입력 2022. 9. 23. 17:12 수정 2022. 9. 23. 17: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른다. 게다가 환율도 오른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경제가 엉망이란 생각이 들고, 내 미래가 너무 불확실해진다는 걱정이 구름처럼 밀려온다. 이런 걱정이 실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돈에 대한 경제수치 변동을 알려주는 지표로부터의 가치인식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돈이란 언제부터 모두에게 사실적이나 사상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남은 인생이 어떤 행로일지도 모른 채 연금제도라는 사회적인 제도 안에 있는 돈의 지급 약속을 하늘같이 믿고 태연히 날짜를 정해 퇴직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는 사람 중에도 의료보험제도와 내 부담의 병원비만 해결하면 웬만한 치료는 잘되리라는 희망 속에서 병실에 누워 있기도 한다.

그게 다 돈과 연관된 자본가치 제도 속의 믿음이다. 인생의 참맛을 알기도 전에 어린 자녀에게 유산을 넘겨 후손이 쓸 돈부터 챙기게 하는 부모들도 변화무쌍할 자녀의 미래를 현재의 돈에 맡기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셈이다.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지면서 가상화폐 연구자들은 정부 통화제도의 통제를 벗어나 돈의 개념을 디지털 공간으로 구조화하고 창안했다. 서로 믿는 사람들끼리 가상화폐를 돌려 갖는 일도 이제는 마음껏 한다. 누군가의 예명이라지만 ‘사토시’란 사람이 비트코인을 만들어 동료 연구자들에게 써보라고 돌린 사건도 그런 유(類)의 한 발단이다. 이렇게 바람처럼 만들어진 가상의 돈들은 마음대로 가격을 올려도 된다는 투기 심리를 등에 업고 어느새 수백조원대에 이르는 현실의 돈이 됐고, 여러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매일 머니게임과 유사한 판이 벌어지고 있다.

돈을 둘러싼 ‘그들만의 세상’

이에 반하는 중대한 세상의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바로 ‘뉴 스페이스 패러다임’이다. 이 단어는 우주개발에서 요즘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뉘앙스를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적용이 가능한 말이다.

우선 미국이 정하는 새로운 국제동맹 관계의 공간 한정화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교훈으로 삼아 서방과 러시아의 국경선을 현실의 장벽으로 만들 구상을 하는 듯하다. 이는 미국이 코로나19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가 발을 뺀 것이나, 동시에 코로나19를 구실로 안전한 신뢰관계 구축이 불분명한 여타의 저개발국들에 인적 교류의 벽을 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나아가 선진국들의 대도시는 그 안에서 다시 내부 공간이 좁게 구분되고 있다. 우선 고급 주택의 가격상승은 그 도를 넘어 이제는 가격이 아니라 교묘한 진입장벽이 됐다. 뉴욕에서는 평당 4억원짜리 아파트가 나왔고, 우리도 서울 어딘가는 1억원을 넘겼다. 우리가 자주 사회복지나 인권평등의 기반이 좋은 도시로 여기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예로 들어보자. 코펜하겐은 요즘 도심 안 위치가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루 안에 걸어서 생활이 저절로 되게 연결되는 쾌적한 도시(woven city)를 미학적으로 구조화하는 중이다. 그 일대 집값은 하늘을 찌른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엔 1분이면 생활접근이 가능한 ‘집 앞 도시’를 만드는 구역도 있다. 그 동네도 집값이 금값이다. 스웨덴의 많은 지방은 아직도 눈만 오면 갇히는 마을이 적지 않고, 학교도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원격으로 다녀야 하는 외진 곳도 많다.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들의 도심에서 완전하고 안전한 생활공간이 생겨나는 것도 하나의 뉴 스페이스 패러다임으로 보인다.

이렇게 소리 없이 특정한 공간들이 구체적으로 세분화되는 것은 역사 속 성곽도시(walled city)의 재현이라 볼 수 있다. 흑사병 이후 유럽에 이런 성곽도시가 많이 생겼다. 르네상스는 그런 공간 안에서 내부화해 발달한 특수층 지식문화의 시대였다. 장기적으로는 그 공간 안에서 별도의 경제활동이 시중경제와 구분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전망이다. 투자(investment)나 이자(interest)는 모두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돈을 대주고 빌려주면서 생겨난 단어들이다. 그걸 금융업자들이 대중화한 역사는 길지 않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투자시장이나 이자시장에서 찬밥이다. 사모펀드는 총원이 50명을 넘지 않고 그들끼리 거액을 어딘가에 투자하는데, 주로 서로 잘 아는 대상에게 투자한다. 그들은 프로 분석가의 도움이 크게 필요 없다. 그래서 선진국의 투자회사에는 서로 어울린다는 의미로 연합(associated)이라는 이름이 많다.

원래 시티(city)란 단어 자체가 대중과 구분된 공간에서 나온 말이다. 로마군이 점령한 런던의 일부 구역에 점령군을 따라온 로마상인들이 자유로운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정해 준 장소가 오늘의 시티가 됐다. 런던의 뱅크(bank)란 지하철역도 시티 지역에 있다. 요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사정없이 금리를 올린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사실 연준은 미국 금융업자들의 연합체가 본체다. 그들의 관심사는 시민이 잘 사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금융제도와 경제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 후진국이나 서민, 청년에게 연준의 자비나 동정은 없다. 각기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무릇 제도는 그것이 금융통화제도라 해도 이렇게 담고 있는 의미에는 인간본위의 배려가 허약하다. 각국은 금융제도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절절맨다. 물가상승은 이런 제도관리에 재갈을 물리는 악동이다.

정부, 서민 보듬는 ‘감각’ 시급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은 이러한 국제경제의 거친 파도에 지금 어쩔 줄을 모른다. 여타의 쟁점으로 지지율도 심상치 않지만, 국내외 경제안정의 혜택이 서민과 청년에게 언제 다가갈지 알 수가 없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내년 예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업기술과 과학연구 등 대기업 관련 큰 예산은 늘었지만, 정부지출 증대를 기대하고 사는 중·소상공인이나 서민들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줄었다. 시중의 대출도 줄고 금리도 오르는데 이렇게 정부지출조차 대중 경제생활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좋은 국가경제 제도는 영세 사업가나 서민, 청년들에게 큰 응원이 돼야 한다. 그 돈을 근원적으로 좌우하는 국제경제 시스템은 원래 따듯한 가슴이 없다. 지금 국제경제 동향만 보고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지원을 결정하면 답이 없다. 여기엔 정부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정부 감각은 대통령실의 정무 감각에서 출발한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따듯한 돈을 믿는 서민에게 촉을 세울 때다. 시간이 급하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