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던 구찌 살려낸 '그림자 조직'의 정체[BOOKS]

박대의 2022. 9. 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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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버시티 파워 / 매슈 사이드 지음 / 문직섭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영국 축구협회는 수십 년 동안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축구대표팀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기술자문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위원회 구성원 중 축구 전문가는 1명뿐이었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창업가, 행정가, 교육 전문가 등이 이름을 올렸고 스포츠와 관련된 사람도 럭비, 사이클 등 축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다. 위원회 멤버였던 '다이버시티 파워'의 저자 매슈 사이드도 탁구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전문가가 거의 없는 위원회를 지켜보는 축구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축구가 가진 가치체계나 규범을 넘어섰다. '반항적인 아이디어(rebel ideas)'라 불린 이들의 관점은 축구 전문가들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문제의 사각지대를 좁혀갔다.

위원회에서 겪은 경험은 사이드가 책을 집필하려는 주제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성에는 과소평가된 힘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은 사이드가 위원회에 속하기 전까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이드는 현실에서 다양성을 일과 삶에 활용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한다. 먼저 '무의식적인 편견(unconscious bias)'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의식적 편견은 재능·잠재력의 부족보다 인종·성별 등 자의적 요인으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된다. 이는 사람들의 능력이 얼추 비슷한 상태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1970년대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여러 지역의 관현악단에 남성 연주자가 더 많은 이유가 능력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블라인드 오디션 실험에 나섰다. 그 결과 여성 연주자가 마지막 단계를 통과할 가능성은 300% 높아졌다. 블라인드 오디션이 보편화됐고 주요 관현악단의 여성 연주자 비율은 5%에서 40%까지 늘었다.

또 사이드는 '그림자 위원회(shadow boards)'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주요 의사결정과 전략을 경영진에게 조언하는 이 조직은 유능한 젊은 사람들을 조직 전체에서 선발해 구성한다. 전통적으로 높은 마진을 누렸던 프라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활동에 뒤처지면서 매출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도 손실을 입었던 것과 달리, 구찌는 그림자 위원회의 젊은 직원들의 통찰을 받아들여 온라인 전략을 강화해 4년 새 매출을 2배 이상 늘리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제안은 '주는 자세(giving attitude)'다. 자신의 통찰을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제공하고 관점을 공유하며 지혜를 전해야 다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한 의과대학에서 입학 첫해에는 받기만 하는 개인주의자들의 성적이 좋았지만, 2학년 때부터 협업적 집단이 그들의 성적을 따라붙었고 3년째에는 그들을 넘어섰다. 더 높은 과정으로 갈수록 협업이 중요해지는 의과대학 수업 구조의 변화가 영향을 준 것이다.

이 책은 인종, 성별, 성정체성, 종교 등을 기준으로 소수 계층의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판단이 정치적 올바름(PC)이라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조직의 성공과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추구돼야 함을 강조한다. 책은 다양성이 사회적 인식을 향상하기 위한 수단일 뿐 조직의 성과에는 해가 된다는 편견을 가진 자들에게 다양한 사례와 연구 자료를 근거로 다양성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려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뛰어난 인재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는 집단 지성이 필요했다. 사이드는 여전히 능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책을 통해 소개된 사례들을 접하고 조금이나마 다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을 책에 담았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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