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소설은 내 신앙이자 계속될 실험"

박동미 기자 2022. 9. 23. 16: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 지난 22일 저녁 도쿄에서 막 날아온 무라타 사야카 작가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 :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의점 인간’을 쓴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무라타6 :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하기 위해 첫 방한한 일본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편의점에서 20년을 일하며 한국인 동료도 많이 사귀었는데…. 이제야 처음 와보네요. 그때 그 친구들이 어디선가 이 기사를 보고 ‘와 무라타가 소설 쓰는 사람이 됐네’ ‘편의점에서 아직도 일하나’ 하고 있을 것만 같아요. 하하."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편의점 인간’(살림)으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무라타 사야카 (사진)작가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16년 수상 당시에도 여전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화제가 됐는데, 지난 22일 입국하자마자 서울 마포구의 호텔에서 만난 작가는 "지금은 완전히 전업 작가로 산다"며 환하게 웃었다. 방한은 23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인데, 마침 새 장편 ‘지구별 인간’(비채)의 한국판도 나왔다.

무라타 작가는 일본 독자들 사이에서 ‘크레이지(미친) 무라타’로 불린다. 발표하는 소설마다 독특한 시선, 파격적 설정으로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어서다. 예컨대, 반향을 일으켰던 ‘편의점 인간’은 죽은 새를 보고 불쌍하다 대신 ‘구워 먹자’고 말하는 ‘감정 없는’ 아이가 나온다. 소설은 그가 30대 중반이 돼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렸다. 연애, 결혼, 취업 활동 없이 18년째 편의점에서 같은 일만 반복하는 주인공은 이미 평범하지 않지만, 자신은 편의점 안에서 안전과 평온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았다고 믿는다. 일상적 풍경에서 ‘조용한 충격’을 끌어내는 작가는 이후 ‘소멸 세계’ ‘살인 출산’ ‘무성 교실’ 등을 통해 일관되게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과 ‘정상’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제 그 답을 좀 찾았을까. 작가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어서 스스로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이제 보니 평범도 정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전부 조금씩은 이상하잖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선 조금 더 이상하고요. 또 저마다 내면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품고 있죠."

최근 나온 ‘지구별 인간’은 현지에선 ‘편의점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평을 들었다. 소설엔 스스로 ‘지구별 인간’이 아니라고 믿는, 비슷한 상처를 지닌 세 사람이 등장한다. 자신들은 외계인이고, 지금 지구인에게 세뇌당하고 있다는 것. 촘촘한 과학소설(SF)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상적 요소가 가득한 소설은, 현실성이 짙은 전작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무라타 작가는 "상상력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에 이끌렸다"면서 "도저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 속에서 글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의식하는 동안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이번 작가축제 주제가 ‘월담’이잖아요. 나에게 담이 있다면 그건 상상이고, 전 정말이지 그걸 뛰어넘어보고 싶어요."

아쿠타가와상 외에도 무라타 작가는 일본 내 주요 문학상 5개를 모두 휩쓸며 한때 ‘무라타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굳이 비결을 물으니 "소설의 노예가 된 것뿐"이라고, "나는 소설을 정말 맹신한다"고 했다. "작가는 소설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소설의 신’을 받는 사람이죠. 종교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빠지잖아요. 일종의 ‘신앙’인데, 그러면 내 신앙은 소설이고 또 계속될 실험입니다. 말하고 보니 조금 무섭네요, 하하."

무라타 작가는 주로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한때 카페에 갈 수 없어 괴로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우리 모두가 거대한 심리실험의 장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전염병과 관련해 다른 정보, 다른 믿음으로 사람들이 나뉘는 걸 봤다"면서 "같은 세계를 사는 줄 착각했던 거다. 원래부터 우린 이렇게 갈라져 있었고, 그걸 코로나가 확인시켜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불안과 괴로움, 두려움을 작가는 결국 자신의 신앙으로 견뎌냈다. 다시 말해, 소설을 썼다. 해야 할 일이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그는 "몸 속에 잠든 음악을 깨워 흐르게 해준다"며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문학론을 설명했다. "소설은 악보이고 독서는 연주"라면서, 음악이 사라진 세계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소설 다음으로 사랑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하염없이 걸으며, 음악이 주는 상상을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그린다고 했다. "취미이자 명상이기도 해요." 종종 동네에서 그 모습을 본 지인들이 연락을 준다. "얼마 전에도 ‘무라타 상, 엄청 웃으면서 걷고 있던데요’ 하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아마도 기분 좋은 영상이 떠올랐었나 봐요, 하하."

박동미 기자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