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바이든에게 쪽팔려서' 라고 하지..대통령실의 지록위마

2022. 9. 23. 15: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의눈] 그냥 '잘못했고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꺼내기 부적절한 말'을 하는 동영상을 보고 처음에는 답답한 한편 헛웃음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 회담'을 나누고 흔들리는 표정으로 돌아서던 윤 대통령이 뱉어낸 말이니 '대통령도 사람이니 속상했나보다'라는 생각도 했다. 확정되지 않은 정상회담을 발표한 건 외교가에서는 '아마추어적 실수'라지만 일정을 변경한 건 미국 측이라는 점도 '참작 사유'라면 '참작 사유'였다.

그러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해명을 봤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라는 말의 '국회'가 미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였다고 한 건 문제의 소지를 떠나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라임' 즉 랩 가사 운율 맞추기에도 어긋나는, '바이든'이라고 들리는 말이 사실은 '날리면'이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영상을 본 수많은 사람이 잘못 들었거나, 수많은 녹음기기에 동시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이건 정부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인 '거짓말'인 게 뻔히 보이지 않나.

'철의 여인'을 자칭하는 김 수석도 머쓱했던 모양이다. 기자에게서 '대통령에게 직접 묻고 확인받은 거냐'는 질문이 나오자 "저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다"라고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했다.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바이든과 날리면이 헷갈리게 들릴만한 건 아니지 않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여당에서 유행하는 사자성어 공방으로 표현하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해야 할까.

'무리수' 해명 앞에 여당 지도부도 갈 길을 잃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내가 귀가 나쁜지 모르지만 아무리 여러 번 들어봐도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며 '귀 나쁜 사람'을 자처했다. 여당 원내 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졸지에 국내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정부 발언의 경위나 내용"도 모르는 사람이 됐다. 사실 기자 역시 김 수석의 해명을 보며 눈을 의심해 '눈 나쁜 사람'이 될 뻔 했다.

김 수석이 해명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차라리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내가) 바이든'에'(에게)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고 해명하는 게 더 이치에 닿지 않나.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귀로 '바이든은'이 너무 또렷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현장 배경음을 지운 녹음 파일을 들어봐도 "바이든은"이라는 말은 도통 바뀌어 들리지 않았다.

우리만의 착각은 아니었을 게다. 사람 귀는 다 비슷한지 인터넷에도 "태극기 휘바이든", "봄바람 휘바이든" 같은 '밈(meme) 게시물'들이 이미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날 아침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출연한 한 현지 기자도 "코리안 아메리칸 보좌관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이 분들이 듣기에는 바이든이다(라고 했다). '이게 한국말로 날리면이라고 들릴 수 있나'라고 반문해왔다"는 말을 씁쓸한 듯 꺼냈다.

그나마 미국인들의 반응은 나빠 보이지 않긴 한다. 윤 대통령의 'XX'를 'idiot(바보)'으로 번역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는 현재 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있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에는 "뭐가 문제야? 그가 절대적으로 옳아", "나는 (미) 의회를 옹호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어", "이게 세계가 보는 미국이야"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인은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 보고 '다행'이라거나 '외교 성과'라고 하긴 민망하다.

난리통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그냥 '잘못했고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여당 말대로 '외교 중인 한국의 대표선수'가 벌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곤란한 상황이 펼쳐졌겠지만,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최소한 온 국민이 '청력 테스트'를 시도하며 '대통령실을 대표해 국민 앞에 선 공직자가 거짓말을 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일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대(NYU) 키멜 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