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우영우'가 쓴 유쾌한 이야기..글을 읽고 나면 이상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책과삶]

오경민 기자 2022. 9. 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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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제공.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304쪽 | 1만6500원 

파리정치대학(시앙스 포)에 다니는 조제프 쇼바네크는 1학년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교우들이 학교 근처 유명한 작은 바인 ‘바질의 집’에 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 하나가 조제프에게 그 자리에 오라고 권했다. 조제프는 거절했다. 학생은 혹시 조제프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일까봐 음료수값을 내주겠다고 하며 거듭 초대했다. 조제프는 갑자기 도망쳤다.

조제프가 무례하거나 이상해 보이는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제프는 1년 내내 한 번도 친밀감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자신을 초대하는 학생에게 불안을 느꼈다. ‘별안간 분풀이를 하려는 걸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 학기가 끝났고 이제 집에 가서 여름내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식당에 갈 이유가 있을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화성인의 비밀 기지로 같이 가보자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당장 그러겠다고 답하겠는가? 아마도 그곳의 생명체를 만나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기에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이다. … 이런 비유는 지나친 억지가 아니다. 결국, 나는 화성인이든 학급 동료든 함께 식당에서 식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책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의 저자 조제프는 자폐스펙트럼 장애 중 하나인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유명대학인 시앙스 포를 졸업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아마르어, 아제르바이잔어, 에티오피아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독일어, 핀란드어, 영어 등 10개 언어를 독학으로 배웠다. 조제프의 ‘천재성’은 최근 신드롬을 일으켰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박은빈)를 연상시킨다. 극중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다. 조제프의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도 그를 ‘천재 자폐인’이라고 칭하곤 한다.

조제프는 ‘우수함’ ‘천재’라는 표현에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기도 전에 오리온자리를 이루는 별들을 외고, 막 걷기 시작할 때쯤 “프랑스는 왜 다시 왕국이 되지 않나요?”라고 체코어로 물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걷기 시작할 때 공중에서 발을 휘저었다. 다른 초등학생처럼 굴렁쇠를 굴리거나 신발끈을 묶을 줄은 몰랐다. 바칼로레아에서 ‘매우 우수’하다는 성적을 받았지만 그 시험을 치르러 갈 때 지하철을 타는 일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우수함의 기준은 임의적”이라고 말한다.

조제프는 ‘자폐인’이라는 수식어도 거부하고 자신을 ‘자폐를 지닌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나는 조금 도발하려는 의도에서 ‘자폐증을 지닌’이라는 표현을 다른 표현과 더불어 계속 사용한다. … 결국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기준으로 인간을 묘사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나는 자폐증이라는 영역 안에 내 모든 것을 욱여넣을 수 없다. 자폐증은 내 신장이 약 195㎝라는 것과 같은 내 여러 특징 중 하나다”라고 썼다.

책 표지에는 문 손잡이가 그려져 있다. 문을 열듯 책의 표지를 열면, 조제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펼쳐진다. 그의 세계는 명확하다. 자칫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 그의 글을 읽으면 당연해진다.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면 나는 돌아서서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조제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누구도 조제프에게 ‘뒤돌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부른 ‘조제프’는 그가 아니라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시앙스 포에 다니던 시절, 그는 수업이 끝난 후 우연히 교내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두 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학생’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생이라는 사실’과 ‘학생이 아닌 채로 한두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사이에서 모순을 느꼈다.

그는 의외의 사건들을 마주하며 어떤 규칙은 반드시 따르거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당시 나는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흰고래 무리에 속한 외뿔고래”처럼 삶을 헤엄쳐온 조제프가 자신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펼쳐놓는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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