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좌석 사이 좁은 공간은 누구의 소유인가..네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은밀한 힘[책과삶]

이영경 기자 2022. 9. 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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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태우려고 좁아진' 비행기 좌석 간격
승객들은 항공사가 아니라 서로를 탓한다
선착순·점유·노동 등 소유권 결정의 6가지 논리
부와 권력 가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까
비행기 좌석의 등받이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을 내리면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 작업 등 업무를 할 수 있다. 이때 앞좌석 승객이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뒷좌석 승객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 좁은 공간은 누구의 소유일까. 언스플래시

마인

마이클 헬러·제임스 살츠먼 지음|김선영 옮김|흐름출판|396쪽|1만9800원 

책의 제목은 ‘Mine’ 즉 ‘내 것’이라는 뜻이다. 부제는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의 법칙’이다. 귀가 솔깃한가?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상당수는 안타깝게도 ‘내 것’으로 만드는 쪽에 속하지 못할 것이다. 책은 말한다. “국가, 기업, 힘 있는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어떤 근거로 손에 넣는가에 대한 원칙을 끊임없이 바꿔왔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다.” 무엇이 ‘내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체는 힘과 권력이 있는 쪽이다.

책은 인상적인 사례로 시작한다. 키 180㎝가 넘는 사업가 제임스 비치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앞좌석 등받이에 달린 접이식 테이블을 내린 후 준비해온 무릎보호걸쇠를 부착했다. 플라스틱 걸쇠인 이 장치를 접이식 테이블에 장착하면 앞좌석을 뒤로 젖힐 수 없다. 비치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쳤다. 앞좌석의 승객은 느긋하게 등받이를 뒤로 밀었다. 의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걸쇠 때문이었다. 화가 난 앞좌석 승객이 등받이를 뒤로 확 젖히면서 걸쇠가 노트북을 내리쳤다. 비치가 앞좌석을 밀어붙이고 다시 걸쇠를 걸자 앞좌석 승객이 비치의 얼굴에 음료를 뿌렸다. 다행히 ‘고공 난동극’은 여기서 그쳤다. 비행기가 비상상륙해 두 사람을 내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비행기 좌석 사이 좁은 공간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갈등으로 보인다. 앞좌석 승객은 뒤로 젖힐 수 있는 공간은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팔걸이 버튼을 누르면 좌석이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내 소유물에 딸려 있기 때문’이라는 귀속 논리다. 비치는 좌석 위아래 수직 공간은 자신의 영역이라는 또 다른 귀속 논리를 펼쳤다. 여기에 선착순의 논리가 더해진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승객들은 모두 좌석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 비치는 앞쪽 공간에 대한 독점권을 ‘먼저’ 차지했다. 또 걸쇠를 채우고 노트북을 연 순간,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했다. 소유권을 결정할 때 적용되는 ‘귀속, 선착순, 점유’의 권리가 이 사건에 모두 등장한다.

하지만 간과한 지점이 있다. 왜 이렇게까지 좌석 사이 공간이 좁아서 갈등이 생기는가? 항공사의 이윤과 연관이 있다. 예전에는 기내 좌석 간격이 널찍해서 좁은 틈새가 누구 차지인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공사들이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좌석 간격을 줄이면서 갈등이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8㎝였던 간격이 지금은 78㎝로 줄었다. 어떤 항공기는 71㎝에 불과하다.

대다수 항공사는 ‘모호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방치한다. 이코노미석에 좌석을 더 많이 채우고, 좌석 사이의 좁은 공간을 앞좌석 승객에게 한 번, 뒷좌석 승객에게 또다시, 두 번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승객들은 항공사를 탓하기보다 서로를 탓한다. 부유한 승객들은 더 쾌적하고 넓은 비싼 좌석으로 이동할 것이다. 좁은 공간으로 인한 갈등은 항공사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고공에서 벌어지는 자리다툼의 내막이다.

저자인 마이클 헬러는 전작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에서 하나의 대상을 너무 많은 사람이 조각조각 나눠 가지면 협력이 깨지며 모두가 손해보는 현상을 설명해 화제를 모았다.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오히려 경제 활동을 방해하고 부의 창출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마인>은 소유권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와 소유권 결정에 은밀한 영향을 미치는 이들은 누구인지 파헤친다. 소유권은 우리의 일상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친다. 항공기의 좁은 좌석부터 넷플릭스 드라마, 신장이나 자궁 같은 신체 장기, 기후변화 해결책까지 소유권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소유권을 조종하는 리모컨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고, 우리도 조작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리모컨을 조작하려면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소유권을 결정짓는 6가지 논리는 선착순(먼저 오면 먼저 대접받는다)·점유(점유의 법적 권한은 90%다)·노동(내가 뿌린 것은 내가 거둔다)·귀속(나의 집은 나의 성이다)·자기 소유권(내 몸은 나의 것이다)·상속(온유한 자들이 땅을 상속받는다)이다. 여섯 가지 논리가 전투를 치러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자원 소유자들은 소유권 개념을 조금만 고쳐도 귀중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이용해 우리를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조종할 수 있다.”

선착순의 논리는 일견 타당하고 명백한 기준이다. 먼저 줄을 선 사람이 입장권을 가지거나, 신상품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선착순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인기 아이돌 콘서트의 티켓을 암표상들이 매크로를 이용해 선점한 뒤 비싼 값에 팬들에게 되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국엔 줄서기 대행업체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신 줄을 서게 한다. 라인스탠딩닷컴, 스킵더라인 같은 업체들은 비와 추위에 떨며 줄을 대신 서는 사람들에게는 최저 급료를 주면서, 자리의 대가로 많게는 6000달러까지 부른다. “부유한 백인이 가난한 흑인에게 돈을 주고 대신 줄을 세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디즈니랜드는 ‘소유권 설계의 달인’이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긴 대기줄을 서야 하는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패스트플러스’라는 새로운 예약 제도를 만들었다. 놀이공원에 오기 전 지정된 인기 놀이기구 중 세 개를 예약하면 정해진 시간에 바로 탈 수 있는 제도다. 패스트플러스 입장객들은 긴 대기줄에 서 있을 시간에 대신 음식과 기념품을 구매하면서 더 많은 돈을 썼다. 디즈니랜드는 더 과감해졌다. 프라이빗 VIP투어를 만들어 3000~5000달러를 내면 그룹당 최소 일곱 시간 동안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들은 직원의 도움을 받아 비상구로 몰래 들어가기도 한다. 돈을 받고 시간을 판 셈이다.

돈을 더 내면 나중에 가도 먼저 대접받는 방식은 부유한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 책은 “경제 전반에 걸쳐 소유권은 먼저 온 사람보다 나중에 온 사람을, 시간보다는 돈을, 평등보다 특혜를 인정해주는 쪽으로 기본 원칙을 조용히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일해서 얻었으니 내 것(노동)이란 주장도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다. 디즈니는 이 분야에서도 비상한 면모를 보였다. 플로리다의 한 어린이집 벽면엔 미키 마우스가 그려져 있는데, 디즈니 법무팀은 어린이집에 ‘불법복제’한 벽화를 지울 것을 요구했다. 어린이집 벽화조차 용납 못하는 디즈니의 ‘옹졸함’엔 월트 디즈니의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의 첫 캐릭터인 토끼 오스왈드의 판권을 배급사에 빼앗긴 뒤 디즈니는 캐릭터 무단도용 사례에 강경하게 대처했다. 디즈니 법무팀은 1년에 수백 건의 소송을 건다. 이는 창작활동(노동)에 대한 보상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디즈니는 저작권 연장을 위한 로비를 벌여 1948년까지였던 보호 기간을 2003년까지 늘렸다가, 다시 2023년까지 늘렸다. 로비스트를 고용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들인 결과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키마우스는 2004년 한 해 매출만 58억달러로, 어떤 유명인보다도 수입이 많았다. 저자는 “디즈니와 그 동맹인 저작권 보유자들이 노동에 대한 보상 논리를 이용해 소유권 원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치고, 공유 저작물을 대폭 줄여 나머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주 적나라한 사례”라며 “볼모로 잡히는 것은 문화”라고 지적한다. 저작권은 이제 퍼블리시티권으로 확장돼 문화의 자유로운 향유를 제한한다.

1987년 에미상을 수상한 TV다큐멘터리 <아이즈 온 더 프라이즈>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다룬 것으로, 기록보관소 82곳에서 구한 영상 및 스틸사진 275장을 사용했다. 다큐멘터리는 에미상을 받고도 20년 이상 창고에 박혀 있어야 했는데 작품을 다른 매체에 재공개하려면 수백 건의 라이선스 협상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자잘하게 쪼개져 문제가 되는 ‘그리드록’ 현상이다. ‘그리드록’은 질병 치료와도 영향이 있다. 기초연구에 얽힌 각종 특허 때문에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이 개발되고 나서도 시장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마존은 킨들을 통해 전자책을 보는 고객에게 전자책을 ‘구매’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상 소비자는 제한된 라이선스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존은 전자책을 독자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책은 장기매매, 난자 매매, 자궁 임대와 같은 신체의 ‘자기 소유권’에 대해서도 논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도 탄소배출권, 오염물질 배출권과 같은 소유권과 연관돼 있다고 설명한다.

소유권에 대한 논의는 아마존, 넷플릭스 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아마존은 계정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독자들이 ‘구매’한 전자책을 삭제할 수 있다.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편집하거나, 재량으로 주문을 취소할 권한이 아마존에 있다”는 내용을 사람들이 읽어보지 않고 ‘동의’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유권은 모호한 구석이 많다. 저자는 소유권은 쪼개거나 합칠 수 있는 개인 간 권리의 집합과 같은 ‘나뭇가지 다발’이며, 최근 확대되는 공유경제는 소유권을 쪼개고 쪼개 대부분의 사람이 소유권이라는 나뭇가지 다발에서 잔가지 하나만을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머지않아 소유권의 모든 권리 다발은 소수 기업에 집중될 것이고, 이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잔가지 정도의 이용 권한을 얻을 것이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알고 대비하는 것이 낫다. 소유권의 리모컨을 쥐고 누르는 이가 누구인지, 어떤 이득을 얻는지 알고, 나아가 소유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설계하기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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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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