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터라이트'를 담았다, '유토피아'를 보았다[김창길의 사진공책]

김창길 기자 입력 2022. 9. 23. 13:48 수정 2022. 9. 2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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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저 높은 곳에/ 자장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던 세계가 있다네….” 영화 <오즈의 마법사> OST ‘무지개 너머에(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 가사처럼 사진작가 팀 스미스는 후터라이트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2010년 스프링 밸리 자치구. ⓒTim Smith

‘노플라키아(NOPLACIA)’,/ 즉 ‘누구도 가지 않는 곳’이 한때 내 이름이었다./ 플라톤의 ‘국가’가 나와 필적하는 나라라고,/ 혹은 내가 게임에서 이겨먹은 나라라고 나는 이제 주장하겠다./ 그의 공화국은 그저 산문 속 신화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실제로 그가 그렸던 나라,/ 사람들과 부와 굳건한 법률 체제를 지닌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는 곳’,/ ‘고플라키아(GOPLACIA)’가 내 이름이 되었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계관시인이 유토피아 섬나라에 바치는 시)

후터라이트 여성들이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2010년 디어보니 자치구. ⓒTim Smith

팀 스미스의 포토스토리 ‘이 세상 것은 아닌(In the world, but not of it)’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한다. 16세기 영국의 인문주의자는 실재하지 않는 이상향의 나라인 유토피아를 글로 썼고, 21세기 캐나다의 사진가는 실재하는 유토피아를 사진 찍었다. 2022년 제20회 ‘동강국제사진제’ 국제공모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팀 스미스가 13년째 기록하고 있는 ‘후터라이트(Hutterites)’의 이야기이다.

후터라이트의 역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판된 16세기 초에 시작된다. 교회의 부패를 비판했던 성직자들로 우리는 대개 ‘루터’와 ‘칼뱅’의 이름을 기억한다. 면죄부를 파는 교회를 루터가 비판했고 칼뱅은 그의 뜻을 이었다. ‘야코프 후터’라는 이름의 성직자는 유아 세례를 부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의 신앙고백은 의미가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후터는 세례를 다시 받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세례를 다시 받는 것은 과거의 세례가 무효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해의 역사가 시작됐다. 1536년 2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광장에서 후터는 화형을 당했다. 상처 난 그의 몸에는 브랜디가 뿌려졌다고 전해진다. 후터의 후손들을 일컫는 후터라이트는 현재 북미 대륙의 평원에 흩어져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들이 개척한 자치구는 대략 500곳이며 인구는 4만5000명 정도다. 500년 가까운 박해의 역사에서 지금이 가장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터라이트 여성들이 유채꽃밭을에 있다. 2010년 디어보니 자치구. ⓒTim Smith

초원, 농부, 카우보이, 일몰, 뛰어노는 개를 3일 동안 구경하기…. 인디언 제로니모의 말처럼 “태양의 빛을 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바로 캐나다의 대초원이라고 팀 스미스는 말한다. 뉴욕처럼 세련되고 미래적인 도시 풍경에 사로잡힌 이들도 있지만, 그는 정반대의 사진가다. 2009년 5월 초원을 거닐던 스미스는 풍문으로만 듣던 후터라이트의 자치구에 우연히 발을 들여놓는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폐쇄적이라던 후터라이트 여성들은 고개를 쉽게 끄떡인다. 스미스는 그들을 좀 더 알고 싶었다. 후터라이트와의 접촉은 13년 동안 지속된다. 그의 궁금증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후터라이트가 “서구 사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동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비록 ‘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자본주의’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후터라이트 자치구에는 사유재산이 없다. 그들이 읽은 것은 토머스 모어의 소설이 아니라 성경 사도행전이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칼뱅의 직업소명설로 대표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의 한 분파인 후터라이트는 성경에서 공산주의 정신을 발견한다. 성경에 적혀 있는 “모든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는 삶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난 지도 오래된 마당에 재산을 공유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카를 마르크스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했던 종교가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니까. 생산수단의 공유화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믿음에 근거한 실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도 시간에 한 어린이가 사진가를 바라보고 있다.2017년 디어보니 자치구. ⓒTim Smith

팀 스미스의 사진에 담긴 후터라이트의 삶을 들여다본다. 마을 식당에서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7년 디어보니 자치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5세에서 15세까지의 어린이들은 모두 한 곳에서 식사를 한다. 공동 육아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남녀를 구분해 자리에 앉은 것으로 보아 보수적인 문화도 감지된다. 이 사진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흥미롭다. 사진가와 피사체의 묘한 긴장의 끈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운데의 소년이 팀 스미스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본다. 스미스는 고민에 빠진다. 사진가는 자기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투명인간이 되어야 사람들은 평소 하던 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그가 13년 동안 후터라이트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팀 스미스는 거의 투명인간이 될 뻔했다. 이 장난꾸러기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사진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녀석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아저씨가 보여요!” 하지만 사진은 실패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모르는 척하는 것은 아이들의 본성에 맞지 않다. 한 명쯤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장면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거의 완벽하게 투명인간이 됐던 사진가가 있었다. 미국 다큐멘터리사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워커 에번스다. 35미리 콘탁스 카메라를 외투에 숨긴 에번스는 긴장을 풀고 가면을 벗은 뉴욕 지하철의 승객들을 사진에 담았다. 하지만 팀 스미스는 투명인간이 될 수 없었다.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후터라이트가 사진가의 방문을 받아들였는데 몰래 카메라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명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되기 위해 선택한 팀 스미스의 방법은 시간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팀 스미스의 사진술이다.

해질녁, 하다사 멘델이 말을 타고 호수를 건너고 있다. 2016년 베이커 자치구. ⓒTim Smith

팀 스미스가 기록한 후터라이트의 사진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거의 투명인간이 된 그가 포착한 자연스러운 모습들이다. 짚단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어린이들, 다른 자치구로 출가하는 데보라의 결혼식 피로연, 지역 하키 대회에서 우승해 환호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사진가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장면들도 있다. 비교적 자주 사진에 담긴 베이커 자치구의 소녀 하다사 멘델의 모습들이다. 말을 수영시키고, 마을 체육관에서 덤벨을 들고 줄타기를 하는 멘델은 사진가의 존재를 충분히 감지한다. 하지만 멘델이 사진가를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와 함께 보냈던 오랜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진가의 존재를 확실히 의식하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진들이 있다. 소박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 닭 도살 작업을 마친 후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청년, 셔츠 가슴 포켓에 돋보기와 펜, 수첩을 넣고 포즈를 취한 한 노인의 사진 등이 그러하다.

인형을 품고 포즈를 위한 소녀는 후터라이터의 전형적인 의복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2016년 메이플 그로브 자치구. ⓒTim Smith
도축 작업을 마친 한 청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년 디어보니 자치구. ⓒTim SMITH

메이플 그로브 자치구의 소녀 네바다 왈드너는 자기 모습을 복제한 듯한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커 자치구의 쌍둥이 자매 케일라와 켈리의 모습은 다이앤 아버스가 찍은 기이한 쌍둥이 소녀와 달리 포근한 눈빛으로 사진가를 바라본다. 비슷하다는 것은 후터라이트 자치구에서 혐오스러운 것은 아닌가보다.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복식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고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바깥세상에서 유행하는 스니커즈 신발을 신거나 치마에 감춰진 종아리에 헤나 문신을 그리는 등 자기만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디어보니 자치구의 소녀 미셸은 2015년에 꽃무늬 원피스에 분홍색 이어폰을 끼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5년 후 미셸은 레게 머리를 하고 청재킷을 걸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치구를 벗어나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미셀의 모습이다.

외부 세계의 흐름과 접점을 찾는 일은 어렵다. 농장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사용하던 휴대폰은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팀 스미스의 단골 피사체 하다사 멘델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가와 크로스핏을 배우고 있다. 외부 세계로 통하는 문을 얼마큼 여는가는 자치구의 목사와 감독관이 결정한다. 물론, 세상 바깥의 것들에 대한 그들의 눈빛은 곱지 않다. 하지만 자치구의 생존을 위해서는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셸처럼 바깥세상으로 떠나는 후손들도 있지만, 후터라이트의 신념을 이어나갈 후손들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자치구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리더는 소외를 느끼지 않을 규모로 공동체를 꾸려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들은 자치구의 규모는 15개 가구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으면 외롭고, 많으면 갈등이 있을 것이다. 밀 농사를 짓고, 축산업을 하는 이유는 새로운 자치구 건설을 위한 땅을 사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만큼 후터라이트는 세상으로 향한 문을 연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가와 크로스핏을 배우고 있는 하다사 멘델이 물구나무 서기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2016년 베이커 자치구. ⓒTim Smith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지금 당신이 속한 세계가 무언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상상했던 16세기 유럽은 문젯거리가 많았다.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가 분열했고,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양모에 욕심을 낸 영국의 지주들은 소작농을 몰아내고 목장을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쳤다. 토마스 모어는 지주들의 인클로저 운동이 양들을 난폭하게 만들어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며 영국 사회를 비꼬았다. 그가 말한 울타리가 탐욕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5세기가 지난 지금도 양들은 사자처럼 으르렁대고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후터라이트의 자치구는 엄연히 지도 위에 있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지도 위에 표시할 수 있는,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이름 지었다. 살아생전 푸코가 팀 스미스의 사진을 보았다면 후터라이트를 헤테로토피아로 불렀을까? 그는 후터라이트와 비슷했던 종교 공동체를 예로 들며 헤테로토피아를 설명했다. 19세기 말 예수회 수도사들이 건설한 파라과이의 경이로운 식민지 이야기다. 수도사들은 토지와 가축을 모두의 것으로 선포했다. 아침 다섯 시면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식민지에 울려퍼졌다. 주민들은 종소리에 맞춰 농장으로 나갔고, 식당으로 향했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이면 ‘부부의 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종소리가 울렸다. 수도사들은 매일 밤 즐겁게 종을 당겼다. 그것은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캐나다 지도 위에 표시된 후터라이트 자치구의 숫자는 늘고 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다른(hetero)’ 삶이 대초원 위에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그러한 대초원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듯 무지개를 띄워준다.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 팀 스미스. 대초원의 유토피아, 아니 헤테로토피아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스미스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 한가로운 저녁을 보내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든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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