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의 시론>초격차 없는 '경제안보'는 사상누각

기자 2022. 9. 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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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기술전쟁이 생존 좌우할 시대

한국은 미·중 갈등 최대 격전장

경제·외교·안보 총력 대응해야

낡은 규제 혁파 신산업 지원을

연구·개발로 초격차 확보 필요

경제안보 실패 땐 구한말 운명

많은 사람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행보에 새삼 놀란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의존도에서 탈피하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산업 대전환 전략의 고삐를 바짝 죌 때 감지는 했지만,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가히 위압적인 정책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고, 초강대국답게 매섭고, 별로 빈틈도 없다. 반도체, 배터리 등 4개 품목 공급망 조사, 반도체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 제재 시행 강화는 서막에 불과했다. 중국 기술견제를 위한 미국 혁신경쟁법 통과, 한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반도체 칩 4’ 동맹 추진, 미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혜택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공장 투자 금지를 담은 반도체 법,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담은 행정명령…. 모두 미국 중심주의적 정책, 미·중 간의 기술패권전쟁과 얽혀 있다.

이런 상황은 구한말 때 조선을 전리품인 양 놓고 벌어진 열강 간 각축의 데자뷔로도 비친다. 물론 당시보다 한국의 국력은 비할 나위 없이 신장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경제영토’ 확보 3위 국에 올라섰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철저한 대응은 긴요하다. 미·중 권력 서열 핵심 수뇌부들의 잇단 방한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승부에서 한국을 매우 중차대한 ‘선결과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광석화 같은 미 공급망 재편에 다급해진 중국도 최근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급파’했다.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결론부터 말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했다. 경제, 외교, 안보, 통상까지 결합한 총력 대응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샌드위치 형국의 기술 볼모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기술패권은 경제적·군사적 차원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 분야의 글로벌 우위를 추구하는 것’(최계영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란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의 기업 간 기술 경쟁과 시장 점유율 확보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자원이 빈약해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 민감도가 높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은 한국 산업과 기업들에 곧바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가 경제성장 및 기술 자국화 등 산업안보의 전략적 관점으로 반도체 산업경쟁력에 접근해야 한다. 핵심 장비 소재 개발 및 기술력 제고, 반도체 연구·개발(R&D)인력 양성과 핵심인력 유출 방지, 시스템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창출 전략이 필요하다”(현대경제연구원 ‘반도체 산업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와 시사점’)는 제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뒤집으면 K-반도체의 취약점이자,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바이오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살리고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협력과 동맹을 추구해야 한다. 초격차 기술로 추격은 따돌리고 뒤처진 분야는 따라잡아야 한다.

21세기 초입의 냉엄한 국제질서와 흐름은 한 치의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력산업의 경쟁력 퇴보와 쇠락을 보완하고 신산업을 진흥할 움직임은 별반 찾기 힘들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앞장서 ‘파업조장법’ 통과에만 혈안이 돼 있다. 낡은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들의 창의력과 R&D 의욕을 북돋워야 하지만 이익단체의 입장만을 반영, 공공의 이익은 도외시한 채 새로운 규제 만들기에만 골몰해 있다. 1865년 제정된 영국의 ‘붉은 깃발법’은 마차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증기 자동차의 도심 주행 속도를 시속 3.2㎞로 제한했다. 혹독한 후유증을 초래한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명사다.

중국과 러시아 등의 전체주의 강화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공동 대응해야 할 ‘신냉전’이 현실화하면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없게 된 시대가 됐다. 한국이 더는 허방에 빠지거나, 덫에 발목이 잡혀 회복 불가능한 처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 추진할 시기라는 점을 절실하게 자각해야 한다. 문화일보가 오는 29일 ‘문화산업포럼(MIF) 2022’를 통해 ‘신(新) 경제안보와 초(超)격차’라는 화두를 제시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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