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돌아가는 동그라미'

김주영 기자 입력 2022. 9. 23. 11:24 수정 2022. 9. 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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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

LP·CD·LD·DVD·블루레이

공통점은 ‘돌아가는 동그라미’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에 홀대

기성세대 티 내고 싶지 않지만

동그란 판 듣고 강의하는 것은

파일 소중함 가르치고 싶은 욕심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준은, 자신의 물건을 ‘잘 버리는 사람’과 ‘못 버리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 쪽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게다가 평생 많은 물건을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다. 지내기에 별로 좁지 않은 방이 있고, 피아노가 있는 스튜디오도 따로 마련돼 있다. 하지만 모든 공간에 물건이 꽉 차 ‘머리에 이고 지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최근에 궁여지책을 생각해냈다. 렌털 창고가 활성화한 것은 꽤 오래지만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았는데, 마침 스튜디오 주변에 한 곳이 새로 생긴 것이다. 곧바로 작은 사이즈(평수)의 공간을 빌려 짐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지난 추석 연휴 대부분의 시간을 오래된 짐 정리와 그 과정에서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옛 추억들과 함께 보냈다.

음악이 직업이니 내가 세(貰)든 창고로 후퇴시켜야 할 짐의 대부분은 음악 관련 책과 자료, 과거의 연주 프로그램과 전단, 그리고 음반들이다. 특히, CD와 LP는 무게와 부피가 책 이상으로 나가고, 잘못 보관하면 부서질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음반을 ‘짐’이라고 하는 나 자신에게 새삼스럽게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사실 요즘의 추세가 그렇게 바뀐 지 오래다. 일과 관련된 자료를 다루는 사람과 취미생활로 음반을 컬렉션 하는 경우는 상황이 또 다를 테지만, 아무튼 단순히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려 할 때, 굳이 오디오를 켜고 음반을 그 안에 넣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LP 음반이 전해 주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음향, 고음질 CD 등이 만드는 청정 사운드에 대한 기호를 따지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나 역시 몇 년 전 차를 새로 바꾸면서 CD 플레이어가 장착되지 않은 채로 출시되는 신차에 대해 개탄이 나올 정도로 속상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심해져 조그만 휴대전화 안에서 해결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게을러진 걸까.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음악 저장 매체를 이용하고 겪은 세대가 됐다. 초등학교 때는 클래식·가요·팝송·만화영화 OST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LP 판에 ‘전축 바늘’을 올려서 들었다. 그리고 이전의 음질과 기능을 완전히 뛰어넘은 CD가 나온 중학생 때에는 무척 고가였던 음반 한 장을 사는 게 꿈이었다. 1980년대는 LP와 CD, 카세트테이프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레이저디스크(LD)가 등장해 영상 기록 매체의 신기원을 열었던 기억도 새롭다.

잠깐이지만, 디지털 콤팩트 카세트(DCC), 미니 디스크(MD), 디지털 녹음 테이프(DAT) 등도 유행했고, 비디오테이프의 시대를 지나 비디오 CD(VCD)를 만났을 땐 컴퓨터에서 영화를 본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영상과 음질 양쪽에서 LD·DVD, 심지어 블루레이까지 이제는 ‘고용량 파일’에 그 능력이 달리니 한마디로 세월이 무상하다. 이 기록 매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돌아가는 동그란 물체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껏 내게 음악은 이 ‘돌아가는 동그라미’에서 나오는 것으로 머릿속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동그라미’들이 홀대받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외부에서 강연 요청을 받아 준비할 때 반드시 확인하는 사항이 바로 컴퓨터 안에 광학디스크드라이브(ODD)가 들어 있는지 여부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최근의 컴퓨터에는 대개 디스크드라이브가 들어 있지 않다. 전문 음향 기기들이 갖춰진 강의 시설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컴퓨터 환경만 있는 곳이라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번 강의에는 드라이브 있는 컴퓨터가 꼭 필요한데요.”

“아,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정적인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휴대용 ODD를 하나 구해 쓰고 있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다. 세대를 구분하거나 이름을 붙여 규정하는 건 싫지만, 이른바 ‘MZ세대’들에게서 이런 말도 들었다.

“CD 돌아가는 거 말씀이죠?”(DVD는 아예 모르는 경우)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꼭 틀어야 하나요?”

일부러 기성세대인 것을 티 내며 강의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동그란 판’을 들고 가는 것은, 희귀한 자료인데 너무 좋은 음악이라 강의를 듣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 때문이다. 세대 간 약간의 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나의 경우, 혼자 고이 보관하던 음악을 남에게 알려주려는 행동이다. 반면 처음부터 소유보다 공유의 개념이 강한 젊은 세대들은 굳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귀하다’는 설명과 함께 남들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줄 이유가 별로 없다. 지식이나 정보, 소소한 생활의 내용까지 비밀이 없이 모두 알려지는 사회에서, ‘귀하고 소중함’이란 개념은 어쩌면 그 시작부터 새로이 세팅돼야 할 듯싶다.

물론 MZ세대라고 애착하는 대상이 없을 리 없을 것이다. 하물며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나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이다 보니, 그 감동과 기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두려는 간절함에 얘기가 길어졌다.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음악, 온라인 어디에선가 떠돌고 있는 그 ‘파일’ 들에 대한 소중함을 후배 세대들에게 가르쳐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리할 음반을 한 장씩 꺼내며 고민해 봐도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는다. 장고(長考) 끝에 창고로 갈 녀석들을 솎아낸 자리에 먼지가 수북하다.

대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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