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짜파게티

서울문화사 2022. 9. 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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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지만 얄미운 면에 대한 이야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 겨울을 느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여름을 연다는 사람이 많은데, 나의 경우는 짜파게티와 비빔면이 이 자리를 완벽히 대체한다. 짜파게티가 유난히 맛있을 때 가을이 오고, 비빔면이 문득 생각나면 오늘이 여름의 시작이겠거니 한다.

요즘은 특히 짜파게티가 나의 모든 식욕을 지배하고 있다. 나름의 다이어트용 ‘식단 조절’을 하느라 억제와 절제를 하며 매일의 식탁을 마주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두 팩의 짜파게티 무더기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물을 바짝 졸여서 꼬들꼬들하게 만든 뒤 가장자리를 바삭하게 태운 달걀프라이를 올리면 얼마나 맛있을까, 잡채용 돼지고기를 후추 맛 살려 구운 뒤 촉촉하게 끓인 짜파게티랑 함께 집어먹으면 정말 행복하겠지, 동봉된 올리브조미유 대신 화이트 트러플 오일을 뿌리면 레스토랑 파스타 부럽지 않은데 오늘만 눈 딱 감고 한 그릇 말아먹을까… 이런 번뇌를 반복하는 이유는 600kcal를 가뿐히 넘어가는 한 그릇의 열량과 하루 기준치 나트륨의 60%를 넘기는 이놈의 수치들 때문이다.

게다가 유난히 짜파게티를 먹고 나면 식욕이 폭발해 이후 폭식으로 쉽게 이어진다는 경험적 두려움도 한몫한다. 하지만 잘 끓인 짜파게티 한 그릇은 경쾌한 어깨춤을 추게 하는걸, 유난히 묵직하고 강렬한 향이 쉽게 날아가지도 않고 집 안 곳곳에 행복하게 스미는걸. 아, 짜파게티는 애증의 면 요리가 확실하다.

그래서 최근엔 조금 잔꾀를 내어 짜파게티 요리를 변형해봤다. 일단 짜파게티의 면을 부숴 1/3만 남겨 사용한다. 참타리버섯 한 팩을 잘게 찢어두고 올리브오일을 살짝 뿌린 팬에 이 버섯을 바짝 볶는다. 10분 이상 볶아 짜파게티 소스 색깔에 가까울 정도로 색을 내 살짝 크리스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줄어든 면의 자리를 이 참타리볶음이 대체한다는 느낌으로 평소처럼 맛있게 짜파게티를 만든다. 짜파게티 소스를 골고루 머금은 이 버섯 반, 면 반 요리는 꽤 괜찮은 타협점이 된다. 다이어트 식단의 허용 범위를 가뿐히 초과하고 말겠지만, 여기에 화려함을 더하고 싶으면 채끝살을 구워 올린다. 딱 이렇게 한 그릇을 만들어 행복한 식사를 한 어느 주말, 약간은 취한 기분으로 내 SNS에 이렇게 남겼다. “짜파게티에 꽃말이 있다면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WORDS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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