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쳇바퀴, 곤약면

서울문화사 2022. 9. 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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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지만 얄미운 면에 대한 이야기.

365일 다이어터에게 먹는 것은 진정 즐겁고 굶는 건 상당히 애통한 일인데, 굶기보다 비참한 먹기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칼로리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식품, 게다가 ‘면’이라는 점.

곤약면은 다이어터가 눈 뒤집힐 만한 조건은 다 갖췄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백지 상태의 ‘무맛’이 차라리 낫다. 폐타이어와 폐에어백을 잘 씻어 말려 가방이 아닌 먹을 것으로 재생하면 이런 맛일까. 호기롭게 한 박스나 시켰는데 첫 봉부터 아차 싶다. 일단 곤약면은 따로 조리할 필요가 없다. 봉지를 뜯어 물기를 없애고 원하는 소스를 섞으면 된다. 소스와 면이 입안에서 완벽하게 따로 노는 건 그렇다 쳐도 특유의 물비린내 같은 냄새는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면을 채반에 넣고 아무리 바락바락 치대도 미끄럽고 비릿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냉면 육수에 겨자와 식초를 부어도, 매콤한 비빔장을 넣어도, 고릿고릿한 굴소스로 무마하려 해도 곤약면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그러다 SNS에서 곤약 잡내 잡는 법을 발견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전자레인지에 2~3분 돌린 뒤 냉수마찰, 기름 없는 팬에 살짝 볶고 음식에 넣을 때 식초를 약간 첨가한다.’ 제까짓 게 사누키 우동보다 조리법이 복잡하지만 속는 셈치고 도전해본다. 짭조름한 야키소바 소스를 붓고 필살기인 가쓰오부시를 더하니 그제야 좀 먹을 만하다. 아니, 처음 몇 입 정도는 먹을 만하더니, 그 뒤로는 영혼 없는 저작운동에 가까워졌다.

그때 번뜩 스친 생각이 ‘고수’다. 비누 향 나는 고수와 곤약은 공통된 냄새 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한 팩에 200kcal가 넘는 마라탕 소스를 구매했다. 이때부터 일종의 광기 어린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미 칼로리는 안중에 없고 숙주, 푸주, 우삼겹을 아낌없이 넣은 마라탕에 곤약면을 투하, 면기에 담고 고수를 듬뿍 올린다. 극심한 공복과 다이어트의 피로감에 손이 떨렸고, 곤약면을 향한 분노의 젓가락질이 이어졌다. 눈은 거의 울고 있었지만, 입만은 죽은 고무같이 질겅대는 면을 게걸스레 탐하고 빨아들이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곤약 요리를 전부 비웠다. 곤약 냄새를 죽이려 입안에 수류탄을 터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벌거죽죽한 입 주변은 처참하고 입안에는 화약 같은 화자오의 여운이 들러붙었다. 더부룩한 속과 거북한 감각. 먹기였을까 싸움이었을까, 싸움이었다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WORDS 장은지(<모터트렌드> 에디터)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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