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스카프 안 쓰면 인터뷰 안 해" 이란 대통령, CNN 인터뷰 일방적 취소

김혜리 기자 2022. 9. 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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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 여성의 의문사로 전국적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머리 스카프를 착용하지 않은 미국 여기자와의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CNN에 따르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라이시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CNN 앵커이자 국제전문기자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만푸어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뒤 이란 측 보좌관은 라이시 대통령이 그에게 머리 스카프를 착용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아만푸어가 이를 거절하자 라이시 대통령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만푸어는 이란에서 취재할 때는 현지 법률과 관습에 따라 머리를 가리지만, 뉴욕처럼 이란 외 장소에선 머리 스카프 착용이 필요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CNN 그리고 여성 언론인들을 대신해 (라이시 대통령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란 율법에 따르면 이란 내에서 9세 이상인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고 꽉 끼지 않는 헐렁한 옷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1995년 이후 역대 이란 대통령들을 모두 인터뷰했지만 이란 안이나 밖에서 머리 스카프를 쓰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라이시 대통령이 아만푸어와의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는 국내 정치 상황에 따른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에서는 지난 17일부터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됐다가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현장에서 히잡을 불태우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가 격화되자 경찰이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파’ 라이시 대통령은 머리 스카프도 쓰지 않은 이란계 여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보수파들의 비난을 피치 못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계 미국인인 아만푸어는 이날 인터뷰에서 라이시 대통령에게 아미니 사망 사건과 잇따른 시위 등에 관해 질문할 계획이었다. 그는 라이시 대통령의 요청을 전달한 이란 측 인사가 인터뷰 당일이 이슬람력으로 첫 달인 무하람 등 성월이라는 점을 들며 ‘존중의 문제’라고 언급했으며, 반정부 시위가 이란을 휩쓸고 있다고 암시했다고 말했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 전역에서 아미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들끓자 민심 수습을 계속 시도 중이다. 그는 이날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 있는 당사자가 있다면 반드시 조사해야 할 것”이라면서 유가족에게 사건을 계속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아미니가 구타당하지 않았다는 검시 결과를 언급하면서 “성급히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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