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바가지'와 문화문법 이야기

입력 2022. 9. 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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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최 교수는 오늘도 마누라 바가지 긁는 소리에 잠을 깼다. 늙은 나이에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옥상에 평상을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문제는 아내와 의논하지도 않고 만들었다는 것과 지나치게 바가지를 썼다는 것이다. 제 딴에는 제값을 준 것 같은데 남이 볼 때는 지나치게 많이 지불한 것처럼 보이는가 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옥상에 작은 평상 하나 만들어서 제자들과 손주들이 오면 어울리기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공돈(원고료)이 생겨서 신이 나서 만들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자 나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아무 대나 돈을 써대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연일 아내는 바가지를 긁어댄다. 요즘 친구들이 하는 농담을 들으면 정말 공감이 간다. 칠십대 노인은 아침에 눈 떴다고 얻어맞는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기는 하지만 요즘 한국의 아내들의 바가지는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다. 그만큼 면역(?)이 생겼는지 혼날 짓을 하고도 속으로는 “또 한 번 잔소리 들으면 그만이지.”하고 또 사고를 친다. 아마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모양이다.(이런 표현은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간이 부었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다.” 등등. 이런 것을 풀어주는 것을 문화문법이라고 한다.)

‘바가지’는 ‘박아지’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박(瓢, 瓠, 匏)’이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혁거세 왕의 성(姓)을 말할 구절이 있는데, “신라 사람들은 ‘바가지’를 ‘박’이라 이른다. 박(瓠)만한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姓)’을 ‘박(朴)’으로 삼았다.(男兒以卵生 卵如瓠 鄕人以瓠爲朴 故因姓朴)”고 했다. 그러니까 박(박같이 생긴)만한 알에서 나왔으므로 ‘박’ 씨로 성을 삼은 것이다. 어형을 보면 ‘박+아지’의 합성어로 본다. 우리말 접사 ‘아지’는 ‘작고 귀여운 것’에 붙인다.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에 붙어 새끼를 표현하고 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귀여운 ‘박아지’가 ‘바가지’로 변하면서 현대의 여러 가지 의미를 담게 되었다. 물론 표주박만 바가지는 아니다. 알루미늄 바가지도 있고, 플라스틱 바가지도 있고 나무로 만든 바가지도 있다. 처음에는 아마도 나무를 파서 만든 바가지가 시초가 아닐까 한다. ‘두레박’의 ‘박’도 같은 바가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받>발>밝>박’의 변화과정을 거쳤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서정범, < 국어어원사전>)

오늘날 ‘바가지’는 과거에 비해 다양하게 의미가 확장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바가지를 긁다.”, “바가지를 쓰다.” 등과 같이 확장되고 있다. 원래의 의미는 “주로 물을 푸거나 물건을 담는 데 쓰는 둥그런 모양의 그릇”이라고 하지만, 그 외 확장된 것으로 “1. 수 관형사 뒤에 붙어서 의존적 용법으로 쓰여, 분량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쌀 두 바가지), 2.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나 불평의 말, 3.정해진 값보다 더 높게 값을 매겨서 받는 것, 4.군인들이 헌병을 이르는 은어”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것들의 어원을 모두 밝히기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오늘은 ‘바가지 긁다’에 대한 어원만 살펴보기로 한다.

옛날에 전염병이 돌면 그 귀신을 쫓기 위해 상 위에 바가지를 놓고 박박 긁었다. 그 소리가 매우 시끄러워서 귀신(역신)이 도망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리가 매우 시끄러울 때 바가지를 긁는다고 한다. 요즘은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와 불평을 할 때 ‘바가지를 긁는다“고 한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중국에서 춘절이 되면 폭죽을 터뜨리면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염병 귀신을 쫓기 위한 소리가 아닌가 한다.

한편 ‘바가지를 쓴다’는 말은 근자에 만들어진 것으로 “1.(사람이) 요금이나 물건 값을 치르는 데 있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다. 2.(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억울하게 지게 되다”의 뜻이 있다. “똥바가지를 쓰다(남이 져야 할 책임을 억울하게 맡아 지게 되었다. 인격이 몹시 떨어지게 망신을 당하다)”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선친은 일흔 여섯에 돌아가셨다. 그렇게 보면 필자도 이제 십 년 정도 남았다. 김형석 교수가 예순 한 살부터 일흔 다섯 살까지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지금 가장 행복해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바가지 긁히고 사니 이것도 복인가 싶다. 아마도 간이 배 밖으로 계속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까짓것 될 대로 되라지. 허허허!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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