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1일(현지시간) 단행한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의 후폭풍이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3.00∼3.25%로 결정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자이언트 스텝이다.
예상됐던 기준금리 인상 폭보다 시장은 연준의 추가 인상 메시지에 주목했다. 연준은 올해 남은 두 차례 FOMC 정례회의에서 추가 자이언트 스텝을 포함해 1.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속도 조절 없는 고강도 긴축 기조를 시장에 강하게 시사한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 상승률이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전에는 금리 인하를 고려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8.3%를 기록한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강도 긴축을 이어갈 것이 확실시됐다. 미 연준은 2024년 말에야 물가가 2.3%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Fed는 이날 공개한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에서 기준금리를 올해 말 4.4%, 내년 말 4.6%로 기존보다 높였다. 오는 11월에도 연준은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美 3연속 ‘자이언트 스텝’에…천장 뚫린 환율 1400원대
국내 경제가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늪’에 빠져 있는 터라 이번 미국발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당장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13.5원까지 치솟다 전일 대비 15.5원이나 오른 1409.7원으로 마감됐다. ‘1400원’을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 때 2009년 3월20일(종가 기준 1412.5원) 이후 13년6개월 만이다. 코스피도 14.90포인트(0.63%) 떨어진 2332.31에 마감했다. 3년 만기 국고채(3년물) 금리도 연 4%대를 넘어선 4.104%로 마감, 2011년 2월9일(종가 기준 4.00%)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특히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997%로 마감, 3년물보다 낮아졌다.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은 경기침체의 신호탄이다.
시장에서는 13년여 만에 1400원대까지 올라선 원·달러 환율이 킹달러 현상 지속 및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외국인 자본 유출 등으로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환율 상단을 145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암울한 관측도 나온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통화에서 “오버슈팅(가격이 일시 폭등했다가 차츰 진정되는 것)으로 ‘1450원’까지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행도 이날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엔화가 145.89엔까지 떨어지자 1998년 6월 17일 이후 약 24년 3개월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달러당 엔화가 145엔을 넘은 것은 1998년 8월 이래 처음이다.
◆유동성 공급장치 만드는 韓美…통화스와프 의미할까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금융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장치’를 만드는 데 협력하기로 하면서 이런 조치가 한·미 통화스와프로 연결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금융 안정화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양국 금융당국 간 협의를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통화스와프도 양국 협의 대상이 되는 유동성 공급장치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당장 한·미 통화스와프로 직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유동성 공급장치라는 한층 구체화된 협력 도구의 모습이 담기면서 외환시장 협력 강도가 높아졌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및 금융안정을 위해 양국이 외환시장 동향에 관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7월 추경호 부총리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회동 때는 “한·미 양국이 필요하면 (외화) 유동성 공급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표현을 썼다.
◆한미 금리 차 0.75%p로 벌어지며 역전…한은 ‘빅스텝’ 가능성↑
미국이 3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사상 초유의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높여왔지만,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또다시 한·미 금리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 물가상승 등을 유발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예상보다 미국의 통화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은은 올해 남은 10월, 11월 금통위에서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22일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0.25%포인트씩 점진적 인상 기조가 아직 유효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수개월간 드린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연준의 최종 금리가 4% 수준에서 그 이상으로 상당 폭 높아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미 금리가) 4%에서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라는 시장이나 저희(한은)의 기대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다음 금통위까지 2∼3주 시간이 있는 만큼 금통위원들과 함께 이런 전제 조건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흐름, 외환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한 후 기준금리 인상 폭과 시기 등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질 경우 외국인 자본 유출과 원화 약세 등의 우려가 나온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특히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를 더욱 끌어올리게 된다. 고환율 역시 기준금리 인상의 주요 변수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 총재도 이날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가 가장 관건”이라면서 “원화가 절하되는 문제가 우리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고 물가를 잡기 위해서 어떤 금리 정책을 해야 하는지가 한은의 가장 큰 의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