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배구 젖줄? 속이 탑니다" 중고 배구의 절규, 열악한 현실

단양=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입력 2022. 9.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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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 배구는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이 숙적 일본, 터키 등 강호들에 극적 역전승을 거두며 4강 신화를 재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김연경과 김수지, 양효진 등 베테랑들이 태극 마크를 반납한 뒤 여자팀은 거짓말처럼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12전 전패, 최하위 수모를 겪었다. 남자 배구는 20년 넘게 올림픽 본선에 오르지 못한 데다 올해 아시아배구연맹(AVC)컵조차 4위에 머물렀다.

배구계에서는 김연경 신드롬의 착시 현상과 실력 이상의 인기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CBS노컷뉴스 배구팀은 한국 배구의 현실을 직시하고 재도약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묻는 연속 기사를 싣는다. 특히 21일 막을 내린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를 찾은 프로 선수들과 중고교 지도자, 학생 선수, 학부모 등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국 배구의 젖줄인 학교 배구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집중 조명해보고자 한다.
▶ 글 싣는 순서
①"제2의 김연경은 왜 나오지 않을까" 김연경 본인에게 직접 물었다
②'女에 밀리고, 강호에 치이고' 韓 남자 배구 르네상스 언제 오나
③"韓 배구 젖줄? 속이 탑니다" 중고 배구의 절규, 열악한 현실
④'韓 배구 영광 재현하려면' 프로 구단·협회의 문제 인식과 대안
15일 충북 단양국민센터에서 열린 '제33회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개막식에서 흥국생명 김연경 선수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올해로 33회째를 맞는 '한국 배구의 산실이자 요람' CBS배는 남고부 14개, 남중부 20개, 여고부 6개, 여중부 17개 등 총 57개 팀이 출전해 21일까지 뜨거운 경쟁을 펼친다. 류영주 기자
최근 한국 배구계는 스타 탄생에 목마른 상황이다. '배구 여제' 김연경(34·흥국생명) 이후 아직 이렇다 할 스타를 발굴하지 못했다.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재영-이다영(26) 쌍둥이 자매는 학교 폭력 이슈로 사실상 퇴출됐다.

스타 기근의 문제점은 김연경이 빠진 국제 무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여자 대표팀은 김연경과 김수지(35·IBK기업은행), 양효진(33·현대건설) 등 베테랑 스타들이 활약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이뤘지만 이들이 빠진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예선 12경기 전패 수모를 당했다. 김연경 등 베테랑들의 대표팀 은퇴는 급격한 전력 약화로 이어졌고, '제2의 김연경' 발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육성하는 중고 배구 현장에서도 이런 점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제2의 김연경'을 발굴하기엔 구조적으로 열악한 현실이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를 찾은 중고교 지도자와 학부모들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고충들을 털어놨다.

일단 CBS배를 찾은 스타 선수들은 학생 선수들의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5일 대회 개막식 행사에서 시구를 맡은 김연경은 "학생 때는 공격이나 화려한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수비, 토스 등 기본적인 것에 중점을 뒀으면 좋겠다"고 짚었다. 21일 대회 폐회식 행사에 참가한 문성민도 "국내 선수들이 키는 다소 작지만 빠르고 유연한 체형적 특징이 있는 만큼 기본기를 갖추면 그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15일 충북 단양국민센터에서 '제33회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개막 경기인 속초고 대 수성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33회째를 맞는 '한국 배구의 산실이자 요람' CBS배는 남고부 14개, 남중부 20개, 여고부 6개, 여중부 17개 등 총 57개 팀이 출전해 21일까지 뜨거운 경쟁을 펼친다. 류영주 기자

​중고교 지도자들도 이런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 선수들이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운동 시간에 대해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중앙여중 이종화 감독은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예전처럼 훌륭한 선수를 발굴하기 힘든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학생 선수들은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정규 수업을 모두 들어야 하는데 이후에야 운동을 할 수 있다. 오전 수업만 소화하고 훈련을 했던 과거와 달라진 환경이다.

중학교의 경우 운동부 기숙사 운영까지 금지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최근 학생들의 학교 폭력,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고교와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중학교를 제외한 모든 초·중학교의 운동부 기숙사 운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 감독은 "기숙사를 사용하지 못해 야간 훈련도 불가능하다"면서 "아이들이 귀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2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달리 기숙사 운영이 허용되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중학교에 비해 늦게 끝나는 정규 수업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운동할 시간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 지도자들의 의견이다. 목포여상 허진석 감독은 "학교에서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오후 9시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면서 "기숙사를 운영해도 정규 수업을 모두 듣고 오면 운동 시간에 대해 보장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중고교 모두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육성하겠다는 '최저 학력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최저 학력제는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학교체육진흥법 제11조 제1항에 따르면 학교장은 학생 선수가 일정 수준의 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별도의 기초학력 보장 프로그램을 운영해 최저 학력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경기 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

21일 충북 단양국민센터에서 열린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결승전 수성고와 천안고의 경기에서 수성고 선수들이 수비하고 있다. 단양=박종민 기자

​​하지만 반대로 학생 선수들의 운동권은 충분히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성고 김장빈 감독은 "예전에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운동 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면서 "훈련량이 워낙 부족해서 스타 선수가 안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반대로 "주변 환경이 갖춰지면 좋은 선수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감독은 "일반 학생들과 학생 선수들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면서 "일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직업을 갖듯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열심히 해야 선수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면서 "공부를 하면서 운동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동명고 1학년, 동명중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박모 씨는 "중학생 때는 기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입시 및 프로 진출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면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수성고 2학년 학부모 정모 씨는 "이미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면서 "아이들이 진로를 선택했다는 것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 학력제는 학생 선수들을 일반화해서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 제도"라고 지적했다.

21일 충북 단양국민센터에서 열린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결승전 수성고와 천안고의 경기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수성고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단양=박종민 기자

​​​최근 스포츠계에 화두가 된 '대회 및 훈련 참가 허용 일수'에 대한 지도자 및 학부모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해소될 전망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른바 학생 선수들의 수업 일수 제한을 완화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교육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학생 선수의 대회 및 훈련에 따른 결석 허용 일수를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로 제한했다. 그런데 올해 초등학교 0일, 중학교 10일, 고등학교 20일로 축소를 추진하면서 지도자 및 학부모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앞서 탁구 신유빈(18·대한항공)과 김나영(17·포스코에너지)도 이로 인해 고교 진학을 포기했고, 테니스 조세혁(14·남원거점스포츠클럽)은 학업과 국제 대회 참가 병행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 바 있다. 대회를 주중에서 주말로 전환한 종목도 드문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원곡중 학부모 이모 씨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대회에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라면서 "대회를 방학 때만 몰아서 하더라도 아이들이 다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9일 "학생 선수의 대회 참가와 관련된 스포츠혁신위 권고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정밀하게 점검한 결과 현실에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고 분석하고 보완·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학생 선수가 경기 출전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학교 밖으로 내몰리거나, 체육 단체가 대회 개최를 위해 주말 경기장을 찾아 헤매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 

하지만 여전히 중고교 지도자 및 학부모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때문에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면서 "정부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과 운동권을 모두 보장하기 위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아마추어와 프로 배구계 모두 발벗고 나서야 할 부분이다.

단양=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startjo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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