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출 붕괴 상황에 '조업일수 타령'하는 관세청

세종=전준범 기자 2022. 9. 23. 06: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관세청은 열흘 간격으로 우리나라 수출입 수치, 주요 교역 품목과 국가, 무역수지 등의 정보가 담긴 '수출입 현황' 자료를 낸다.

관세청은 자료 중간에 '수출입 특이사항'이란 제목의 큰 네모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명절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 등으로 수출입액이 감소'라고 적었다.

관세청은 21일 발표한 '9월 1~20일 수출입 현황'에도 같은 박스와 문장을 자료 상단 중앙에 잘 보이도록 넣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준범 정책팀 기자

관세청은 열흘 간격으로 우리나라 수출입 수치, 주요 교역 품목과 국가, 무역수지 등의 정보가 담긴 ‘수출입 현황’ 자료를 낸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인 만큼 이 자료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글로벌 교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보 지표라 외신의 주목도 또한 높은 편이다. 요즘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각 언론사가 자료를 받자마자 속보 기사를 쏟아내는 이유다.

지난 13일 공개된 ‘9월 1~10일 수출입 현황’ 자료는 평소 이 기관이 보내는 자료와 조금 달랐다. 관세청은 자료 중간에 ‘수출입 특이사항’이란 제목의 큰 네모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명절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 등으로 수출입액이 감소’라고 적었다. 관세청은 21일 발표한 ‘9월 1~20일 수출입 현황’에도 같은 박스와 문장을 자료 상단 중앙에 잘 보이도록 넣었다.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2021년 2월 이후 꾸준히 두 자릿수를 유지해오다가 올해 6월 16개월 만에 한 자릿수(5.3%)로 떨어졌다. 이후 7월(9.2%)과 8월(6.6%)에도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 9월 들어서는 20일 기준 8.7% 감소하며 아예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다급해진 관세청이 수출 역성장이 조업일수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 배경이다.

관세청

조업일수가 수출입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만약 승승장구하던 수출 실적이 잠시 주저앉은 것이라면 조업일수를 따져볼 만하다. 그런데 요즘 수출 경기가 어디 그런 상태인가. 지난달 우리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26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고, 주요 기관들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가 연일 수출 경쟁력 제고 정책을 쏟아내며 경제 위기 극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관세청은 전에 없던 별도의 박스까지 등장시켜 조업일수 감소를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기자들이 조업일수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쓰도록 유도한 것이다. “작업한 날이 적어 실적이 나빴다”는 말로 국민을 호도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통관 업무를 집행하는 관세청이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출 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만든 것은 자기 본분을 한참 넘어선 행동이다.

그럴듯하게 꾸민 경제 지표를 앞세우고 아픈 지표를 애써 외면하는 건 문재인 정부의 주특기였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로 포장한 고용 지표처럼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 지표의 솔직한 분석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 정부가 정책 성과로 자랑했던 소득·분배 지표를 냉정하게 평가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대부분이 경기 둔화에 신음하는 현 상황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모든 국민이 현실을 직시하고 함께 돌파구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관세청은 여전히 전 정부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