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재난과 약탈

2022. 9. 23.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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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의 기억을 소환하는 판결이 나왔다.

외환위기 때 부실화한 외환은행을 싼값에 매입해 4조원이나 차익을 남기고 매각해 먹튀 논란이 있었던 사모펀드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 사이에 벌어진 소송전 결과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방해해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걸었다.

이 몰염치한 소송에서 패소한 대한민국 정부는 약 4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물어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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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의 기억을 소환하는 판결이 나왔다. 외환위기 때 부실화한 외환은행을 싼값에 매입해 4조원이나 차익을 남기고 매각해 먹튀 논란이 있었던 사모펀드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 사이에 벌어진 소송전 결과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방해해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걸었다. 이 몰염치한 소송에서 패소한 대한민국 정부는 약 4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물어주게 됐다. 정부는 항소하겠다고 하지만 결과를 뒤집기는 힘들다는 것이 냉정한 자본주의 시장의 예측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규칙적으로 공급과잉이 불러오는 공황을 맞는다. 그 규모가 크면 대공황이고 작다면 경기불황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런 충격에 모두가 힘들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의 비밀은 이런 사태를 이용해 부의 재편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공황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든 말든 급락한 자산을 헐값에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엄청난 부를 획득하는 이들이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반복돼온 부의 축적 방식이다.

이런 일은 전통사회에서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경제위기는 주로 자연재해 때문에 발생했다. 경제가 농업에 의해 좌우된 만큼 홍수나 가뭄에 의해 흉년이 들면 바로 나라 경제가 휘청했다.

이런 시기, 가난한 농민들은 양반 지주들에게 땅을 담보로 빚을 내 흉년을 견뎠다. 하지만 짧은 기간 안에 빚을 다시 갚고 토지를 찾아갈 수 없었다.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사정을 이용해 싼값에 토지를 사들이는 것도, 그렇게 토지를 팔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양반들이었다. 그리해 양반 지주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농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게 됐다.

게다가 양반 지주들은 가난한 농민의 토지뿐 아니라 그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도 노비로 만들어 그 처자식들까지 차지했다. 연암 박지원이 토지 소유의 상한을 정하고 상한선 이상의 매점을 엄금해 양반 지주들의 독점을 막으려 정조에게 지어 바친 것이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조선 내내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법률을 만들어 반포하는 왕족과 양반들이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고 농민 좋은 개혁을 하려 했겠는가?

왕조가 사라지고 귀족의 권력 독점도 사라진 민주주의 시대에 이런 병폐는 사라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잘 알려진 일본계 미국인 로버트 기요사키는 트위터를 통해 “역사상 가장 큰 자산 폭락이 온다”며 이때야말로 부자 될 기회이니 지상 최대 할인 이벤트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국내 대부분 경제신문이 별다른 논평 없이 옮겼다.

20세기 초반은 인류에게 힘든 시기였다. 고삐 풀린 무한대 자유를 누리던 자본으로 인해 대공황이 몰아치고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거나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았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요구됐고 될 수 있는 대로 윤리를 내세우는 조심스러운 자본주의를 운영했다. 하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는 ‘인간의 얼굴’마저 내팽개치는 것 같다.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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