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아픈 역사의 흔적, 다양한 시설에 오롯이 담아..언덕 위의 이색적인 산책 코스
부산 도심에 솟아 있는 용두산은 부산을 대표하는 산이지만, 높이가 49m에 불과하다.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과거에는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고 불렸다.
용두산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이 산을 중심으로 1678년에 초량왜관(草梁倭館)이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왜관은 조선과의 무역을 위해 일본의 관리와 상인 등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일본인들은 거주지의 중심에 서 있는 용두산에 그들의 신을 모시는 여러 신사(神社)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 주변에 공원과 광장을 만들어 휴식 및 집회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용두산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라면,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도 있다. 용두산 동남쪽의 바닷가에 있었던 용미산(龍尾山)이 그것이다. 용미산에도 일본 신사가 있었으며, 광복 후에는 부산시청이 있다가 지금은 롯데백화점이 들어섰다. 산을 모두 깎아 지금은 평지이다.
광복 후 용두산 신사는 당연히 사라졌다. 한국전쟁의 피란민이 지은 판잣집들이 그 자리를 메웠으나, 1954년 큰 화재로 모두 타버렸다. 1955년 다시 이승만의 호를 딴 우남공원이 조성되었으며, 4·19혁명 뒤에 용두산공원이라는 옛 이름을 찾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원에는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담고 있는 다양한 기념물과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일본 신사 터를 누르고 있으며, 올라가면 부산시가지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높이 120m의 부산타워가 부산의 상징처럼 서 있다. 기념사진 명소인 1973년 만들어진 꽃시계도 빼놓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꽃시계가 많지만, 초침이 있는 것은 용두산 꽃시계가 유일하다고 한다.
같은 지점에서 찍은 1971년과 2022년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1971년에는 영도와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용두산공원이 부산 시내 최고의 조망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사진에는 50여년 사이에 세워진 높은 건물들로 인해 영도의 봉래산 능선만 겨우 보인다. 이제는 부산타워에 올라가야만 탁 트인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2022년 사진에 새로 생긴 기와집은 1996년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부산시민의 종’의 종각이다.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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