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모래에 머리 박기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고, 우리나라 남해안까지 강풍과 폭우 피해를 입혔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남부지방에 상륙한 지 2주도 안 지나 연이어 태풍이 발생했는데, 이런 가을 태풍은 기존 태풍의 공식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생 지점과 강도 등에서 기존에 경험한 태풍과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앞으로 한반도에 더욱 강한 태풍이 더 자주 올 수 있다고 전망된다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을 뉴스 방송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그리고 실행 전략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언론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모래에 머리 박는 타조’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다루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곧 이어지는 뉴스와 전문가 토론 코너는 특정 정치인을 둘러싼 여권의 이전투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으로 도배되었다. 언론이 본분을 망각하고, 시청률과 구독률 경쟁에 내몰리면서, 정치 가십 전문 유튜브 채널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전문가 토론은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 문제들을 좀 더 상세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시사 토론이나 보도채널의 전문가 토론은 거의 ‘정치 복덕방’ 수준의 담론으로 채워지고 있다.
실제 개별 기자들은 기사에 달린 댓글의 숫자로 성과를 평가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면서도 적극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평가 방식은 소수의 ‘정치 팬덤’의 선호를 대표적인 국민의 선호로 오해하게 만들고, 또 극단적인 팬 클럽의 자기 확신을 더욱 조장한다. 나아가, 합리적이고 자기표현에 소심한 다수의 국민을 공론의 장에서 더욱 소외시킨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윤활유 역할보다 정치의 극단화를 돕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모래에 머리 박는 타조’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비단 언론만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라고 해서 전혀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는 ‘혁신경제-포용성장-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경제 구조 개혁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이런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에는 눈감고 당장 피부에 와 닿는 문제와 정치적 노림수로 총선을 준비하는 정략과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대통령도,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이런 절박감을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아니면, 모래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처럼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에게는 10년 후에 현실화될 문제를 왜 굳이 지금 내가 다뤄야 하느냐는 계산이 섰을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는 재벌과 부자에만 진심인 감세 정책과 규제 완화 정책 외에는 탄소중립과 산업전환과 같은 근본적인 미래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직 2024년 총선 전략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만 머리에 가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은 사정 정국에 대한 대처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여당에 대한 반격 카드로 김건희 여사 문제와 민생을 들고 나오지만, 진정 민생과 미래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제대로 한 적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눈앞에 사탕을 던져주면 민생이라는 오만과 기만이 여와 야 모두에게서 보일 뿐이다.
이대로 2024년 총선 그리고 이어질 지방선거와 대선을 지나 2027년을 마주친다면, 우리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음을 그때에서야 알게 될 것이다. 언론, 정부, 정치권을 ‘모래에 머리 박는 타조’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국민이나 시민사회도 사실은 똑같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소중립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맞닥뜨리면 산업 공동화와 경제적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가장 큰 피해는 노동자와 일반 국민이 당하게 된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박는 것이 위험을 못 본 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더 빨리 감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와 언론이 모래에 머리를 박는 것은 근본적·구조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고착화된 거대 양당 체제와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정치 기득권이 알아서 스스로 바뀔 유인도 이유도 찾기 어렵다. 단기적 성과와 기득권에 매몰된 언론 역시 스스로 바뀌길 기대하기 어렵다.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운동처럼, 시민사회, 노동조합, 각성한 정치세력 등이 정치를 바꾸는 조직화된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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