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의 존재' 여왕을 배웅하며[폴 카버 한국 블로그]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2022. 9. 23. 03:03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마도 수백 명의 한국 분을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영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중 많은 분들은 친절하게 영국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해 주신다. 그 질문들은 대부분 다음의 내용 중 하나이다. 날씨, 음식, 축구, 혹은 영국 왕실에 관해서이다. 최근에 ‘더 크라운(The Crown)’이라는 영국 드라마를 통해 특히 영국 왕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같다. 아마도 한국의 조선왕조를 경험하신 산증인들이 거의 살아 계시지 않아서 한국 분들은 영국에 아직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에 다소 놀라움과 비슷한 종류의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의적절한 때에, 나도 이번 칼럼에서는 평범한 영국 시민으로서 영국 여왕이 내 인생에서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에 대해 한번 써보고자 한다. 그러나 운을 떼기에 앞서, 여기서 읽으실 내용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에 근거한 글이며, 따라서 이 글을 영국 여왕이나 영국 왕실에 대한 모든 영국인을 대변하는 견해로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정말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겠지만 영국 여왕은 영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여왕의 얼굴은 모든 영국의 지폐, 동전 그리고 우표의 디자인이 되었고, 여왕의 봉인은 모든 우체통에 장식이 되어 있었다. 왕실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납품하는 업체는 여왕의 봉인을 자신들의 상품에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데, 만약 영국의 대형마트에 가실 기회가 되시면 상품의 포장을 유심히 보시라. 아마도 여왕의 봉인이 찍혀 있는 물건들을 간혹 보실 수 있을 텐데 이는 마치 어느 유명인사가 허락한 상품 홍보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또한 영국은 여왕의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여왕의 대관식을 기려 10년에 한 번 정도 또 한 번의 특별 공휴일이 지정된다.
이런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영국 개개인들의 삶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국 시민들은 영국 여왕의 ‘백성’으로서의 통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국 시민들은 일생에 여왕을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아주 먼 발치였긴 하지만 여왕을 직접 본 적이 있긴 하다. 여왕이 1999년 이화여대에 방문했을 때 나도 그 큰 무리에 끼어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영국 왕실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던 나조차도 한국에 살던 영국인으로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옆 동네 학교에 가서 여왕을 기다렸다.
무엇보다 여왕은 영국의 국민 할머니 같은 존재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녀가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 영국도 지난 70년간 역사적으로 이런저런 격변을 겪는 동안 여왕으로서든 국민 할머니로서든 변함없는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 하나의 불변적 존재다. 모든 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영국 여왕은 연속성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말은 영국 여왕이 모든 영국인에게 지지와 인기를 받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특히 이런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왕실에 의한 지배구조가 얼토당토않다고 믿는 많은 분들이 있다. 게다가 왕실에 국한된 몇몇의 특권계층을 위해 국민의 피와 땀이 담긴 세금을 낭비하는 것을 혐오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죽은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2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5km나 되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영국인들을 보면 아직도 여왕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지금 영국에 있었더라도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의 인내심은 없었을 테지만, 그의 죽음은 약 15년 전 영국을 떠나온 나에게조차도 확실히 커다란 변화다. 동시에 영국이란 나라 자체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영국 여왕의 죽음을 머나먼 이국에서 접하면서 그를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한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여러 혼란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여왕의 장례식을 시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의적절한 때에, 나도 이번 칼럼에서는 평범한 영국 시민으로서 영국 여왕이 내 인생에서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에 대해 한번 써보고자 한다. 그러나 운을 떼기에 앞서, 여기서 읽으실 내용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에 근거한 글이며, 따라서 이 글을 영국 여왕이나 영국 왕실에 대한 모든 영국인을 대변하는 견해로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정말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겠지만 영국 여왕은 영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여왕의 얼굴은 모든 영국의 지폐, 동전 그리고 우표의 디자인이 되었고, 여왕의 봉인은 모든 우체통에 장식이 되어 있었다. 왕실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납품하는 업체는 여왕의 봉인을 자신들의 상품에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데, 만약 영국의 대형마트에 가실 기회가 되시면 상품의 포장을 유심히 보시라. 아마도 여왕의 봉인이 찍혀 있는 물건들을 간혹 보실 수 있을 텐데 이는 마치 어느 유명인사가 허락한 상품 홍보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또한 영국은 여왕의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여왕의 대관식을 기려 10년에 한 번 정도 또 한 번의 특별 공휴일이 지정된다.
이런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영국 개개인들의 삶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국 시민들은 영국 여왕의 ‘백성’으로서의 통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국 시민들은 일생에 여왕을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아주 먼 발치였긴 하지만 여왕을 직접 본 적이 있긴 하다. 여왕이 1999년 이화여대에 방문했을 때 나도 그 큰 무리에 끼어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영국 왕실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던 나조차도 한국에 살던 영국인으로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옆 동네 학교에 가서 여왕을 기다렸다.
무엇보다 여왕은 영국의 국민 할머니 같은 존재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녀가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 영국도 지난 70년간 역사적으로 이런저런 격변을 겪는 동안 여왕으로서든 국민 할머니로서든 변함없는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 하나의 불변적 존재다. 모든 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영국 여왕은 연속성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말은 영국 여왕이 모든 영국인에게 지지와 인기를 받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특히 이런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왕실에 의한 지배구조가 얼토당토않다고 믿는 많은 분들이 있다. 게다가 왕실에 국한된 몇몇의 특권계층을 위해 국민의 피와 땀이 담긴 세금을 낭비하는 것을 혐오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죽은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2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5km나 되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영국인들을 보면 아직도 여왕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지금 영국에 있었더라도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의 인내심은 없었을 테지만, 그의 죽음은 약 15년 전 영국을 떠나온 나에게조차도 확실히 커다란 변화다. 동시에 영국이란 나라 자체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영국 여왕의 죽음을 머나먼 이국에서 접하면서 그를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한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여러 혼란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여왕의 장례식을 시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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