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국제신문 2022.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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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판치는 사회, 고속성장 신화의 부작용
후세대 대물림 막으려면 지도층 정직성 엄격해야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어린아이조차 입술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묻혀놓고 “나 안 먹었어” 귀여운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과 다섯 번 대화하면 그중 한번은 거짓말이 섞여 있고 의도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매일 서너 번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과 지루함으로 죽을 것이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다. 실제로 선의의 거짓말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윤활유로 작용하기도 하고 연인 사이의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늘 네 생각을 해.” “너보다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한 번은 대학에 떨어질까 심한 불안에 휩싸인 수험생과 얘기를 나누었다. “내년 이맘때면 대학축제 기간이라 정신이 없겠구나. 캠퍼스커플로 축제를 즐기겠네”란 말을 던졌다. 합격을 전제로 한 일종의 거짓말이지만 그 암시가 불안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길 바랐던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그 학생이 인사차 들렀다. “요즘 학교축제 기간인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 돗자리 까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언한 대로 캠퍼스커플이 되었어요.” 여자친구 손을 잡고 함께 진료실을 찾은 것이다. 어떤 거짓말은 긍정적인 자기 세뇌로 작용해 잠재능력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우리가 칭찬과 격려를 강조하는 심리학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짓말이 없는 세상은 평화로울까? 2009년에 개봉한 ‘거짓말의 발명’이란 영화는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을 그렸다. 진실의 나라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방긋 웃는 아기의 부모에게 “아기가 정말 못생겼네요” 돌직구를 날리고 콜라 광고판에는 ‘콜라를 드세요. 설탕 덩어리입니다’고 적혔다. 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기까지 거짓말이 도움 되기도 하고 살다 보면 진실이 거짓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는 자체가 우리가 그만큼 진실에 목마르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국민을 분노케 하는 거짓말도 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했던 당시 치안본부장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해명은 어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 전 재산은 29만 원”이란 말 역시 한국인이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옥시의 광고 문구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 거짓말을 하고 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일종의 자기방어 전략이지만, 거짓말이 들키지 않으려면 앞뒤 계산을 하고 뭔가를 꾸며내야 한다. 새로운 거짓말을 계속 생산해야 하니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발각의 부담보다 눈앞의 이득만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거짓말의 함정이 있다. 처음에는 거짓인 줄 알지만 반복하다 보면 실제 자신의 경험과 기억으로 착각하고 사실로 믿어버리게 된다. 결국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되는 게 거짓말의 덫이다.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남을 속일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가파른 경제 성장의 신화, 그 이면에 자리한 부작용이 아닐까? 고속 성장을 위해서 부정과 부패를 적당히 눈감아준 사회 분위기.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을 한 사람들의 성공 케이스가 널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치인의 실수나 잘못에는 비교적 너그러워도 그들의 거짓말이 들통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데 우리 사회는 거짓말쟁이가 오히려 승리하는 잘못된 사례가 축적된 것이다.

우리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탈(脫)진실의 사회에 살고 있다. 가짜뉴스의 확산은 진실을 찾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SNS에서 같은 입장의 사람끼리 모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퍼뜨리며 확증편향이 강화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진 현실에서 다들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자신의 이익에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대중을 혼란스럽게 한다. 거짓말이지만 ‘우리 편의 거짓말’은 버젓이 용인되고 장려된다. 심지어 우리 편의 거짓말을 옹호하는 행동이 충성의 맹세로 사용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진실과 거짓은 중요치 않다. ‘우리 편에 이익이 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 이슈들은 빠르게 유통되다가 다른 이슈에 묻혀 관심에서 멀어지고, 정작 거짓임이 밝혀질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정직성과 국민 개개인의 정직성은 대체로 같이 간다. 거짓말쟁이들이 성공하는 나라에서는 남을 속여야 성공한다는 사고방식이 그대로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의 거짓말에 좀 더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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