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명의 오션 드림]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국제신문 2022.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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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노아의 방주’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모든 동물 암수 한 쌍씩을 태울 수 있는 방주를 준비해서 대홍수 속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줄거리다. 우리나라에도 ‘목도령과 대홍수’라 불리는 유사 설화가 있다. 천상선녀의 아들 목도령이 대홍수 속에서 목선을 타고 살아남아, 인류가 사라진 후 새로운 시조가 된다는 설화다. 노아와 목도령 두 이야기 사이에 시대적 공간적 연결고리가 있을 수도 없는데 내용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홍수와 새로운 창조. 인류 모든 문명에는 대홍수와 창조에 관한 설화가 하나씩은 존재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이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큰 논리가 인정받는 듯하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든 생명체가 절멸될 것 같은 대홍수는 있었다는 것. 물에 뜨는 배만 있으면 대홍수 속에서도 살 수 있다는 반복된 학습효과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류 뇌리에 각인됐고 또 구전을 통해 생존 전략으로 남았으리라는 것. 그리고 특정 종교가 세를 키운 곳에서는 종교적 가르침으로 승화되고 민간 신앙이 세를 키운 경우는 신화로 남았으리라는 것. 노아의 방주가 완성형 줄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납득할 만한 스토리텔링이 되기 때문이다. 종말을 가져올 대홍수가 온다. 살아남을 길을 알려주는 신의 계시는 방주를 만들라 한다. 계시를 따라 방주를 만든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방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시각을 바꿔보자. 비가 내릴 때 방주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이야기 마무리에는 방주의 ‘완성’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계획과 준비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결정체를 가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다른 관점의 의미 있는 가르침이 읽히기도 한다.

대부분의 성공 신화에는 성공을 가로막는 온갖 방해가 등장한다. 저항과 방해를 이겨내고 완성시킨 결과물, 이어지는 해피엔딩, 신화나 성경 속의 이야기만이 아닌 현실 실사판도 산업 역사에 자주 있다. 1886년 미국 플린트시에서 ‘플린트 로드 카트’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윌리엄 듀란트가 대표를 맡아 마차와 객차를 이용한 운송회사로 사세를 확장하며 미국 최대의 운송업체로 키워나간다. 그 시절 태동한 자동차산업은 ‘포드’의 독무대였다. 1908년 듀란트는 자동차회사를 신설한다. 한때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그룹에 올랐던 제너럴모터스가 이렇게 탄생했다. 미국 최대 마차 운송업체 대표가 이미 확보한 손쉬운 시장을 버리고 후발업체로서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으니 당대의 화제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동차만큼 불만과 저항이 심한 운송수단의 출현은 없었다. 대안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위험한 것을 왜 탈까. 기름으로 움직인다는데 기름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정비된 도로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마차보다 못한 것을 왜 만들까.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은 ‘구체적으로’ 거셌다. 듀란트가 예상한 홍수는 폭발하듯 성장하는 물류시장이었고 홍수 속에 팽배한 사회적 불만도 동시에 알아차렸다. 불만이란 항상 기득권의 방해와 새로운 것들의 출현에 대한 불안감이 섞인 형태로 나타난다. 마차사업에 안주하면 불만을 잠재울 수는 있으나 홍수를 버텨내는 것은 어렵겠다는 것을 듀란트는 알아차렸던 것 같다.

불만을 다스리고 불안을 해소하며 보장된 편안함조차 과감하게 버리면서 선택한 방주로서의 자동차는, 기름 사용이 일상적으로 가능해졌을 때 ‘준비된’ 운송수단으로서의 승부수였으리라. 출현 이후 반세기 만에 세계를 연결하는 초거대시장이 된 자동차산업은, 그가 예견한 홍수 후에 살아남은 세상이 아니었을까. 자동차에서 포드는 사람을 태우는 도구를 보았지만 듀란트는 마차·화차를 대신할 물류수단 역할까지 읽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후대는 자동차산업의 선구자로 포드보다는 듀란트를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홍수로 범람할 강이나 하천도 없는 유럽이나 남미 산악지역에도 대홍수 설화는 존재한다. 이런 사실에서 혹자는 고대 빙하기를 거친 기후변화가 경험하지 못했던 큰비로 나타나고 대홍수 설화로 각색됐으리라 주장하기도 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고대의 대홍수만큼 무서운 의미를 갖지는 않겠지만, 최근 빈발하는 세계 각지의 홍수사태를 기후변화를 염려하는 환경적 시각에서 바라보니 묘한 기시감도 든다.

우리는 가끔 커다란 변화를 홍수로 표현한다. 밀려드는 양과 속도의 위압감, 준비 없이 맞닥뜨리면 속절없이 당한다는 경고를 홍수의 특징에 빗대 차용한 것일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유일한 알람이었고 홍수에 버티는 생명 보존이 최고의 가치였던 노아와 달리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넘쳐나는 정보가 있고 지켜야 할 가치도 다양하다.


기후변화든, 친환경이든 기술이 바뀌고 산업이 바뀌고 해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변화의 대 흐름이 홍수처럼 들이칠 때, 바다를 아우르는 신해양 시대가 왔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완성된 방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제명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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