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택시는 끝내 오지 않았다

최연진 기자 2022.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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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소리는 진작에 들었지만, 정말로 해가 지기만 해도 택시가 멸종될 줄은 몰랐다. 밤 9시를 갓 넘겨서부터 한 시간 넘게 서울시청 앞을 서성였다.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느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5분만, 10분만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2시간 가까이가 됐다. “어휴, 그때 그 법이 통과만 안 됐어도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 법’이 통과된 건 2019년 12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30명 가까이 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이 만장일치였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서로 당(黨)이 다르면 눈만 마주쳐도 싸우던 때라 이견이 없다는 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법안 이름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많은 사람이 그 법을 ‘타다금지법’이라고 불렀다. 택시의 경쟁자로 떠오른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서비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회 고위 인사 몇몇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타다금지법에 목을 매는 의원이 여럿이던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지역구에 택시 조직이 막강하겠죠. 총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국민 여론은 타다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쪽 아니에요?” “순진한 소리 하시네. 선거는 여론으로 하는 게 아니라 조직으로 하는 거예요. 택시 조직이 반대하면 선거가 참 어려워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야당 의원들까지 죄다 찬성을 해요?” “야당 의원 지역구엔 택시가 안 다니겠어요?” 지극히 선거 공학적인 해석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듬해 봄, 총선을 한 달 앞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또다시 이 법을 심사했을 때의 기억도 꽤 생생하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명과 야당 의원 1명이 “이대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며 반발했지만, 야당(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장과 다른 여야 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마지막까지 반대한 두 사람은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우연이었을까.

물론 당시의 여야 의원들이 코로나와 배달 플랫폼의 호황, 택시 기사 감소를 예측하고도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빌리티 산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다고도 믿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택시업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거나, 복수의 타다가 등장해 건전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거나, 적어도 택시 ‘대란’ 같은 건 없었어야 한다.

택시 품귀 현상이 하도 심각하니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에선 요금을 올리자는 얘기도 나온다. 요금 인상이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억울한 것은, 보통 시민들은 지금껏 택시 요금을 올려라 내려라 해본 적도 없다는 점이다. 알 수 없는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여기까지 흘러왔고, 하릴없이 택시를 기다릴 뿐이다.

2020년의 국회의원들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가불해다 쓴 사회적 비용을 2022년의 우리가 택시 요금으로 갚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인제 와서 대책 마련 어쩌고 하면서 끼어들지나 말았으면….’ 이쯤 되니 헌법기관에 바라는 것이 꽤 소박해졌다. 어쨌거나 끝내 택시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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