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물폭탄' 지방 피해 보도 소홀.. 수도권 중심 시각 벗어나야

정리/김정형 기자 2022.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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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9월 정례회의]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장부승·김별아·한준·김태수 위원, 안덕기 부국장, 민세진·금현섭·고산 위원. /김지호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19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안덕기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과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여당 분란]

- 최근 언론은 여당의 내부 갈등을 현장 중계하듯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 정치 기사는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통해 구조적 문제와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장점인데, 여당 내분과 관련해서는 사안을 따라만 가는 것 같다. <사설: 윤핵관 2선 후퇴, 여당 내분 수습 계기 돼야>(9월 1일 자)는 워낙 사안이 복잡해서 그렇겠지만 다들 잘못했고 계속 분란을 보이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양비론(兩非論)을 취하고 있다. 분석의 해상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당 내 소통 문제라든지, SNS를 통해 분쟁이 심화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논쟁이라든지, 아니면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 등 큰 구조적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국정 핵심 과제 중 하나인 규제 개혁 기사를 보면 대부분 사소한 것들만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인 규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규제 개혁 후보로 제시되었던 ‘대형 마트의 휴일 강제 휴무 폐지’ 등은 흐지부지 됐다. 조선일보는 보수 정론지로서 경제적 자유 등의 관점에서 뚜렷한 입장 표명을 통해 규제 개혁 어젠다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 경찰이 19일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 범인을 전주환이라고 밝히고 그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피의자 신원 공개 여부는 경찰이 결정하는데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신문에선 사소한 범죄도 피의자 얼굴이 공개된다. 이번 사건처럼 다른 진범이 나올 가능성이 없는데도 처음부터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범죄자 인권 보호에 치중하다가 정작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받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화재 사진]

- <화마에 스러진 시각장애인... 가족 울린 ‘SOS 손자국’>(8월 27일 자 A8면)은 화재로 사망한 시각장애인 기사인데, 기사 지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사진에는 피해자가 탈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 남긴 그을린 손자국 흔적이 담겨 있다. 구조물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탈출하지 못해 사망한 경우 해당 구조물의 문제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사진을 싣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것은 사망한 사람이 탈출하기 위해 사투(死鬪)한 흔적을 담은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 수도권 집중, 지방 소외 문제가 지난달 ‘100년 만의 물폭탄’ 기사에서도 느껴졌다. <집천장 무너지고 수도 끊겨... 충청·군산도 물난리>(8월 12일 자 A10면)는 전북소방본부가 제공한 사진을 크게 실었는데, 흑백으로 처리되어 더욱 그랬겠지만 의미도 개성도 없어 보였다. 며칠 전 서울 강남 침수 상황에 대해 많은 양의 기사와 사진을 쏟아 낸 것에 비해 부실해 보였다. <고랭지 배추밭이 진흙탕으로... “다 물러져 팔 게 없다”>(8월 16일 자 A8면)는 초토화된 배추밭을 컬러 사진으로 실었지만 피해 초점이 농산물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에 집중되어 지방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난달 16일에도 충청·전북·경상도 지방까지 폭우 피해 소식이 들렸는데, 조선일보 지면에선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 <기초단체장에게 듣는다> 코너는 본래의 좋은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역 현안·쟁점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차치하고, 단체장 개인 홍보나 치적 과시일지라도 ‘육성’을 듣고 싶은데 개발 공약 같은 상투적 내용만 나온 경우가 많다.

- <노란봉투법 통과 땐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 물어>(9월 16일 자 A4면>에서 다룬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을 유도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부당해 보이는 사안이라도 법안을 추진하는 쪽에서도 나름의 명분이 있을 텐데, 소개하지 않았다. 사설·칼럼이 아니라 일반 기사라면 양측 입장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다뤄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보험금]

- <”남편 목숨보다 보험금...”>(8월 30일 자 A10면)은 고액 사망보험금을 노린 사기로 판결 난 사건의 가해자 중 여성이 52%인 반면, 피해자는 남성이 65%인 것을 근거로 이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목이 자극적일 뿐 아니라 배우자 고액 사망보험사기 주체는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게 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 ‘배우자 목숨보다...’ 정도로 제목을 달아도 충분했을 것이다.

- <건보료율 7% 돌파... 연봉 6000만원 직장인, 월 17만7250원씩 뗀다>(8월 31일 자 A2면)에서 “내년 건보료가 올해보다 1.49% 오른다”는 내용을 읽고 헷갈렸다. 직장가입자 보험료율이 올해 6.99%에서 내년 7.09%로 ‘0.1%포인트’ 인상된다는 내용인데, 0.1%포인트 인상된 것을 퍼센트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문 정부 때 건보료율이 14.2% 올랐다. 건보료율을 매년 2~3%씩 올렸다”고 했는데,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보험료율이라는 비율에 백분율로 표시되는 증가율을 언급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 <[2030 플라자]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9월 15일 자 오피니언면)가 SNS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엘리트들이 주로 글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큰 신문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젊은 지방 노동자의 얘기를 날것 그대로 실어주는 것은 독자 저변을 넓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욕을 많이 먹었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과 사회적 분열 지형이 복잡해진 것을 보여주었다.

- <배달의 배신.. 물가 올리는 ‘플랫폼’ 됐다>(8월 22일 자 A1·A3면)는 플랫폼 기업이 인플레를 부추킨다는 내용인데, 수수료와 배달비가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부추겨지는 건지, 아니면 원가 인상 요인으로 수수료와 배달비가 오른 건지 예단해서는 안 된다. 배달비가 오른 것은 플랫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하면 3000원 더 내라” 카카오가 장악한 택시>(8월 23일 자 A2면)는 택시 공급 감소는 언급하지 않고, 급하게 부르는 택시에 수수료를 더 받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속세]

- <공장 지었더니 ‘상속세 날벼락’>(9월 3일 자 A1·A3면) 등은 징벌적 수준으로 부과돼 ‘상속 폐업’을 초래하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중소기업 경쟁력을 위해 맥을 잇는 게 중요한데, 현 기업 상속제도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5%이고 우리는 50%인 것을 보면 기업 영속을 막는 것이 높은 상속세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 <월성 손실 7277억... 국민이 떠안는다>(9월 17일 자 A1·2면)는 탈원전 후유증의 하나로, 한수원이 산업부에 손실 보전을 신청한 내용이다. 요즘 4조원 규모의 ‘대중 교통비 50% 환급’ 얘기도 나오는데, 정부 지출은 비용 부담·배분 문제가 발생한다. 한수원의 손실 보전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코로나 방역 지출은 건강보험기금에서, 주택 가격 안정화 관련 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 기금에서 충당하게 된다. 이런 정부 지원 사업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 글로벌 무대에서의 기업 경쟁은 총 없는 전쟁으로,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대만의 7조원 한국 투자 미국 장관이 가로채갔다>(9월 8일 자 A2면)에서 보듯 대만 반도체 기업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투자키로 한 것은 결국 우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로채 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가치 중립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가 미국을 제치고 투자를 받았을 경우 ‘가로채 온’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 <미국, 플랫폼 독과점 조사.. 한국은 “당사자들 자율규제”>(8월 23일 자 A2면)는 국내 플랫폼 규제가 관련 부처들의 협의 부족과 자율 규제의 미정착으로 난관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과 국내 플랫폼 간 역학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검색, 동영상, OTT 등에서 글로벌 플랫폼이 앞선 상황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플랫폼 규제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옥죄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전기차]

- <한국의 뒤늦은 ‘美 전기차 보조금’ 총력전... 결과는 “협의 채널 개설”뿐>(9월 9일 자 A14면)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 지급과 관련, 미국의 조치가 부당한 것은 맞지만 자국(自國) 우선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방향을 바꾸기 어렵고, 오히려 한국 정부가 상황 파악이 늦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전략의 부재’를 잘 비판했다. <美·中선 보조금 차별 받으면서.. 국내선 계속 퍼줘야 하나>(8월 29일 자 B8면)는 전기 버스 보조금이 중국 업체를 지원하는 꼴이라고 적절하게 지적했다.

- <文 정부 ‘교과서 알박기’... 자유, 남침 표현 뺐다>(8월 31일 자 A1·3면) 등 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역사 교육은 미래 세대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오히려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일을 반복해선 안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했고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하는 것을 추가로 파헤쳐야 한다.

- <‘남침으로 6·25 시작’ 삭제.. 전쟁·분단의 北책임 명확히 안 밝혀>(8월 31일 자 A3면)를 보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역사 서술 관점에 따른 이념 논쟁이 안타까웠다. 물론 편향적이거나 누락·왜곡된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 그에 더해 이념 대립을 넘어선 정사(正史)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면 더 균형감 있고 기사의 신뢰도 커질 것이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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