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올해 국감은 ‘기업인 감사’ 오명 벗어나길

김봉기 산업부 차장 2022. 9.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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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4일 시작 앞두고 상임위별로 증인채택 논의
그간 매년 기업인 ‘줄소환’에 국정감사 본래 취지 변질
2021년 10월 7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업인들을 포함한 일반 증인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매년 이맘때면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의 시선은 온통 국회로 쏠린다. 혹시라도 국정감사(국감) 증인으로 채택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아직 자세한 명단이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국감이 다음 달 4일부터 시작인 만큼 국회 상임위별로 늦어도 다음 주 안에는 여야가 기업인을 포함한 일반 증인들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인들의 국감 출석은 마치 연례행사처럼 돼버렸다. 과거 기사와 국회 자료, 기타 기관들이 파악한 내용을 찾아보니,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 수는 지난 17대 국회 때만 해도 평균 52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18대 국회 때 평균 77명을 기록한 데 이어, 19대 국회 때 평균 124명, 20대 국회 때 평균 155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현 21대 국회에선 팬데믹 상황을 맞았던 2020년 국감 때 기업인 증인 수가 63명으로 떨어졌지만, 지난해에는 92명 정도로 다시 늘어났다.

지난해 네이버에선 창업자인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가 국회 과방위 국감에 출석하고, 한성숙 당시 대표이사는 국회 환노위 증인으로 불려갔다. 카카오의 경우 창업자인 김범수 당시 이사회 의장이 국회 산자위·정무위·과방위에 각각 증인으로, 여민수 당시 공동대표는 국회 농해수위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다. 쿠팡에선 강한승 대표이사와 박대준 대표이사 모두 각각 국회 정무위와 과방위로 불려가기도 했다.

바쁜 기업인을 국감에 불러놓고 증인의 담당 분야와 관련 없는 질문을 하는 ‘촌극’은 거의 매년 국감에서 빠지지 않고 벌어진다. 지난해 국감 땐 국회 산자위에 출석했던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스마트폰 사업 총괄)에 대한 질의가 그 대표적 사례다.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노 사장은 당시 국감장에서 “미국이 반도체 영업 핵심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삼성이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을 지원해달라고 건의하지 않았느냐” 등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노 사장은 “그쪽 분야는 제가 담당을 안 해서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변했지만, 일부 의원은 “어떻게 사장이 그것도 모르느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노 사장은 “삼성전자에는 여러 사업 분야가 있고, 각각 대표가 있기 때문에 저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재차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7시간 넘게 대기하다가 10분 정도 진행된 질의 때 벌어진 장면이었다.

이처럼 증인으로 출석시켜놓고 몇 시간 기다리게 하는 사례도 그동안 다반사였다. 지난 20대 국회 국감에선 자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 지친 한 기업인 증인이 “집에 가도 되느냐”고 위원장에게 묻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새벽 1시 20분쯤 국감이 다 끝나고야 나갈 수 있었다.

이쯤 되면 국감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새겨보게 된다. 국감은 국정조사와 더불어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권한이다. 문자 그대로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의 국정(國政) 활동을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현행 국정감사·조사법에는 국감 대상을 국가 기관, 특별시나 광역 시·도, 공공기관, 감사원의 감사 대상기관(이 경우엔 본회의 의결 필요)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감 때 기업인 증인을 아예 부르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헌법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할 때 필요한 증인의 출석과 증언, 의견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취지대로 기업인 증인 채택은 좀 더 효과적인 국정 검증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활용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국회는 영향력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증인으로 줄소환한다는 지적과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부디 올해는 ‘기업인 감사’로 변질하지 않고 국정감사다운 국감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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