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값싸진 사골'의 사회적 변주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2. 9.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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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선물로 인기 있던 게 소꼬리와 사골이었다. 소꼬리는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꼬리 외에 반골이라 부르는 엉덩이뼈를 붙여서 한 채를 기준으로만 팔았다. 요즘도 한우꼬리는 그런 판매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꼬리곰탕은 한식당에서도 비싼 메뉴였고, 소꼬리찜은 스테이크보다 비쌌다. 수입 꼬리가 들어오면서 이제는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한우 꼬리도 20년 전에 비하면 값이 떨어졌다. 20년 전 가격이 그대로다. 오른 물가에 비하면 엄청 싸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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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도 그렇다. 툭하면 가짜가 돌아다녔다. 갈비짝 다음 가는 인기 선물이었다. 고급 백화점에서 많이 팔았다. 몸보신용으로도 수요가 많았다. 마트에서 세일을 하더니 비인기 품목이 되었다. 이유가 있다. 우선 한우 공급이 늘었다. 더 많이 기르는데, 사골 수요는 늘지 않고 수입이 많다보니 남을 수밖에 없다. 미국·호주 이민을 간 사람들이 현지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소꼬리, 사골이 엄청 싸다는 것이었다. 서양도 먹기는 하는데 싸다. 사골이 특히 싼데, 레스토랑에서 소스 만드는 데나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소꼬리, 사골로 보양하던 관습이 많이 사라졌다. 몸에 좋다는 온갖 건강식품과 약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비타민 몇 종의 시장 규모가 몇 조원 하는 나라이니, 사골이 잘 팔릴 리가 없다. 아파트 생활이 표준이 되어, 뭘 오래 끓이고 달이는 음식 섭생 문화도 줄었다. 사골은 관절에 좋다는 오랜 이류보류(以類補類) 사상이 영향을 준 것인데, 현대의학에선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관절이 아프면 우수한 치료방법이 많으니 사골에 기대는 방식은 고전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지만 사골은 여전히 여러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먹고 있다. 냉장·냉동한 즉석식품은 탕류는 물론이고, 볶음이나 찜에도 조미료 격으로 넣는다. 일종의 산업식품의 노하우랄까.

요즘은 사골로 농축액을 만들어 새롭게 시장에서 팔린다. 힘겹게 탕을 끓이기 어려운 시대에 맞춰 나오는 상품이다. 일종의 조미료가 된다. 감칠맛을 깊게 내준다. 이걸 꼭 탕 만들 때만 쓸 일이 아니라 여러 조림, 볶음에 넣으면 숨은 비법이 된다. 맛이 좋아진다. 서양의 오랜 음식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사골 졸인 것을 쓰는 것이다. 사골에 여러 사회적 변주가 생겼다. 아내가 사골을 끓이기 시작하면 당분간 사골탕을 수없이 먹게 될 거라는 암시의 유머, 아예 ‘사골 우려먹듯이’라는 부정적 비유도 흔하다. 고급이던 사골의 시대는 가고 이런 변주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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