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여왕이 떠난 자리, 스코틀랜드의 선택은

이규화 2022. 9. 2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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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장례식에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 부탁
여름엔 에든버러 밸모럴성과 훌리루드궁 기거
300년 통합 이전 잉글랜드와 피로 점철된 역사
브렉시트 반대한 스코틀랜드, "재투표는 당연"
이전 투표에선 55.3% 대 44,7%로 독립 부결돼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장례식에서 처연한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졌다. 여왕이 생전에 백파이프 연주를 특별히 요청했다고 한다. 백파이프는 스코틀랜드 전통악기로 스코틀랜드 영혼을 상징한다. 이를 두고 여왕이 영국연합국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스코틀랜드에 마지막까지 연합국에 남아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왕이 생전에 스코틀랜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여름에는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있는 홀리루드궁과 그 근교의 밸모럴성에서 머무르곤 했다. 생을 마감한 곳도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이었다. 그러나 여왕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다시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코틀랜드국민당 2023년 10월 분리 독립 주민투표 공언

스코틀랜드는 외교와 국방, 통화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자치를 누리고 있다. 독립된 의회와 정부는 물론 예산편성권도 갖고 있다. 분리 독립은 외교 국방과 통화권까지 온전히 갖겠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운동을 주도하는 곳은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제1당으로서 스코틀랜드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SNP 당수 나컬라 스터전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제1장관)으로, 그는 지난 6월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2023년 10월 19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당시 존슨 총리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은 이미 주민투표로 부결이 난 사안이라고 했다. 2014년 9월 분리 독립 주민투표에서 반대 55.3%, 찬성 44.7%로 독립이 부결된 것을 환기한 것이다.

그러나 SNP와 스터전 당수는 그때 이후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이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2021년 1월 31일 유럽연합(EU)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EU 잔류를 원했던 스코틀랜드인들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해 주민의사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2016년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는 투표자의 62%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분리 독립 후 EU에 복귀한다는 방침이다.

스터전 당수는 대법원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국민투표를 치를 권한이 있는지에 관해 질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허가를 받지 못하면 다음 총선이 사실상 독립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NP가 '독립'을 공약으로 걸겠다는 것이다. SNP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하다. SNP는 작년 8월 역시 스코틀랜드 독립에 우호적인 녹색당과 손을 잡았다. SNP와 녹색당(7석)을 합하면 전체 스코틀랜드 의회 의석 129석 중 72석에 달해 분리 독립 찬성이 과반을 넘는다. 스코틀랜드인들 저류에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높은 편이다.

◇잉글랜드와 다른 민족적 역사적 배경

스코틀랜드의 현재 인구는 550만명(거주 잉글랜드인 8%) 정도지만 면적은 7만8000㎢로 영국 본토의 3분의1에 이른다. 특히 북쪽 대륙붕 셰틀랜드제도 연근해에 석유와 가스전을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산유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지역이다. 반면 스코틀랜드에게는 분리 독립해도 먹고살만하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는 오늘날까지 300년 이상 잉글랜드와 통합국가로 있으면서 언어와 문화, 인종적 동질화가 진행됐지만, 그 이전은 잉글랜드와 피로 점철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 배경이 달라서다. 영국 본섬 북쪽의 스코틀랜드는 켈트족(게일족, 스코트족)이고 그 남쪽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주류다. 켈트족은 라틴계 게르만족의 일파로 기원전부터 브리트섬(영국본섬) 북쪽으로 이주해 살았다. 앵글로색슨족은 서로마 말기인 3~5세기에 걸쳐 현재의 독일 서부와 덴마크 지역에 살던 게르만족이 브리튼섬 남동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두 지역은 각각 왕국을 이뤄 때론 교류하고 때론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묘사된 것처럼 잉글랜드는 끊임없이 스코틀랜드를 복속시키길 원했고, 스코틀랜드인들은 그 때마다 끈질기게 저항했다. 영화에서처럼 13세기 말 윌리엄 월레스는 잉글랜드에 대항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키려 한 불굴의 영웅으로 스코틀랜드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견원지간이던 두 왕국이 가까워진 계기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독신으로 살다 자식 없이 죽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잉글랜드 제임스1세)가 1603년 후계자가 되면서 동군(同君)연합이 형성된 데서 출발한다. 두 왕국은 별개로 존재하면서 왕만 공유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100여년이 흐른 후 1707년 두 왕국은 완전히 한 국가가 된다. 스코틀랜드왕국이 지금의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 중남미 다리엔 지역을 식민지화 하려는 계획(Darien scheme)에 실패하면서 막대한 재정파탄에 빠졌는데, 잉글랜드왕국이 떠안는 과정에서 한 국가가 된 것이다. 이것을 규정한 법이 통합법 (Act of Union)이다.

◇찰스3세 연합왕국 통합 이룰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는 비록 잉글랜드와 한 국가를 이뤄왔지만 핏속에는 이전의 독립을 갈망하는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 잉글랜드가 타국과 축구경기를 하면 스코틀랜드인들은 타국을 응원한다고 한다. 여왕이 스코틀랜드에 깊은 애정을 가져왔음에도 여왕 장례기간에 열린 프로축구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이 여왕을 야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여왕 추모 묵념 시간에 "왕실이 싫으면 박수를 쳐라" "엿이나 먹어라! 왕실" 등 조롱을 퍼붓기도 했다. 여왕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인들의 50~60% 정도는 반(反)잉글랜드 정서가 생각보다 심대하다. 이를 의식한 듯 왕위를 물려받은 지 하루만인 지난 10일 찰스3세는 SNP의 이안 블랙포드 하원 원내대표를 버킹검궁으로 초대해 환담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찰스3세는 어머니가 얼마나 스코틀랜드를 사랑했는지 장광설을 벌였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생을 마감한 곳이 스코틀랜드이고, 공식 장례절차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시작된 것은 왕국 통합을 위해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왕의 영구(靈柩)는 13일까지 에든버러에 머물렀다. 일반인의 참배를 위해 세인트자일스 대성당에 안치됐을 때는 수만 명의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여왕이 영면한 곳이 스코틀랜드였다는 사실을 의미 있게 받아들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왕이 자신의 사거를 예감하고 밸모럴성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죽으면서까지 통합에 기여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왕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은 이제 없다. 국왕이 정치에 관여는 않지만, 현재로선 찰스3세 국왕이 통합 상징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적잖다. 앞으로 1년 영국은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문제가 최대의 정치적 뇌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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