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사모펀드는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다
최근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은 사모펀드 운용사 VIG얼터너티브크레딧을 대상으로 5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쉽게 말해 사모펀드를 통해 500억원을 대출한 것이다. 금리 급등으로 인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멈추다시피 한 현시점을 고려했을 때, 인상적인 자금 조달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타트업 주식 가치 평가에 인색해진 상황에서 지분 매매 대신 '대출' 형태로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에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거래가 가능했던 배경엔 지난해 말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있다. 기존 자본시장법은 사모투자펀드(PEF)에 경영 참여 의무를 부여하고, 대출형 펀드 조성을 사실상 금지했다. 이는 여러 선진국에서 PEF 운용사가 사모신용펀드(PCF)와 사모대출펀드(PDF)를 다룰 수 있도록 허용해 기업이 제1·2금융권 외에도 차입할 길을 폭넓게 열어준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신용·대출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역차별이란 비판까지 받았다.
이제라도 법이 바뀌어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가 대출형 펀드 등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SK에코플랜트 등 신사업 투자가 활발한 대기업도 국내 운용사의 대출형 사모펀드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고 있다.
칼로 사람을 찌르면 나쁜 도구가 되지만, 음식을 자르는 등 대부분 이용 방식에서 칼은 유용한 도구다. 사모펀드 역시 먹튀 세력 손에 들리면 나쁜 도구가 되지만, 활용 방식에 따라 기업이 고비를 넘기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오랫동안 국내 사모펀드가 대출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속도를 내지 않았던 것은 '사모펀드는 나쁘다'는 대중의 선입견에 묻어가는 안일한 행태가 아니었을까. 구태여 '나쁜' 자본을 위해 열심일 동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국내 기업과 운용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더 많은 유망 기업이 도산 위기를 넘고 지금까지 활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증권부 = 박창영 기자 hanyeahwe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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