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도전, 가장 뜨겁게 춤추리

윤민섭 입력 2022. 9. 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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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X '데프트' 김혁규 인터뷰


22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롤드컵 참가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마포구에 있는 DRX 연습실로 이동해 ‘데프트’ 김혁규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롤드컵 선발전 비하인드, 이날 오전 공개된 ‘인벤’과의 인터뷰를 보고 새로 생긴 의문 등을 질문했다.

-롤드컵 선발전에서 KT 롤스터, 리브 샌드박스를 연이어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선수 생활을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자존심도 다 내려놨다. 나는 원래 소속팀을 제외하면 전부 경쟁상대로 여겨왔다.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것도, 타인으로부터 배워오는 것도 꺼렸다. 하지만 이번엔 주변에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연습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젠지 고동빈 감독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 정도인데, 사실 주변인들에게 전부 물어봤다.
바텀 메타를 돌이켜보면 루시안, 시비르, 제리, 아펠리오스, 칼리스타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것들의 절대적인 티어를 나누기보단 픽들을 어떻게 조합하는지, 또 픽마다 강한 타이밍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했다. 티어를 나누기가 힘든 메타였다. 픽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팀원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늘어나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다.”

-플레이오프 때도 12.14패치로 리브 샌박과 붙었다. 그때보다 더 이기는 방법이 선명히 보이던가.
“절대적인 픽의 능력치가 있지만, 우리 팀에 맞는 픽이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플레이오프 때까지만 해도 루시안·나미를 높게 쳤다. 제리나 시비르를 그 조합으로 라인전에서 충분히 뚫을 수 있다고 여기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 하지만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다른 팀에도 물어보고, 스크림을 해보니 제리로 눕는 쪽이 DRX에 더 잘 맞고, 충분히 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선발전 전까지는 제리 티어를 높게 치지 않았다 보니 상대팀들도 제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더라. 나는 제리를 정말 많이 연습했는데, 상대는 제리를 밴도 하지 않고 나한테 넘겨줬다. 그래서 나도 연습했던 플레이를 대회에서 그대로 활용했다.”

-고동빈 감독 외에 또 어떤 이들과 티어 정리에 대해 의견을 공유했나.
“EDG ‘메이코’ 톈 예에게 대략적인 티어를 물어봤고, T1 ‘케리아’ 류민석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KT가 탈락한 이후에는 ‘라스칼’ 김광희한테도 대화를 나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변인들한텐 전부 물어봤다.
재밌는 게, 물어봤던 팀들의 티어 정리 결과가 전부 다르더라. ‘내가 티어 정리를 잘못한 게 아니고,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하기 나름이구나’싶었다. 내가 내놓은 답을 더 집요하게 파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리브 샌박은 서머 시즌 동안 루시안·나미를 선호하지 않다가 선발전에서 적극 기용했다.
“KT도 리브 샌박도 루시안·나미를 크게 선호하지 않을 거로 예상했다. 앞서 담원 기아가 선발전에서 루시안·나미를 잘 활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두 팀 모두 루시안·나미를 굉장히 선호하더라. 그런데 우린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연습했던 구도가 루시안·나미 대 제리·룰루였다. LPL 팀들과 3~4일 동안 그 구도만 연습했다. 상대하기 편했다.”

-루시안·나미 대 제리·룰루 구도에서 김 선수가 판단한 핵심 요소는 무엇이었나.
“초반 1~3레벨 구간은 제리·룰루 쪽이 주도권을 잡는다. 그 구간을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이후 게임 양상이 많이 바뀐다. 또한 나는 제리를 할 때 롱소드 스타트를 많이 했는데 LPL 선수들과 연습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루시안을 잡았을 때 LPL 선수들이 제리로 도란의 검에 방어막을 선택하더라. 이러면 루시안 쪽이 ‘끈질긴 추격(E)’을 한 번만 실수해도 라인전에서 공격적으로 치고 나갈 타이밍을 상실한다. 그 두 가지가 중요한 매치업이었던 것 같다.”

LCK 제공


-선발전 첫 경기, KT를 이길 수 있겠단 확신은 언제 들었나.
“KT전은 1세트 승리 후 시리즈도 잡겠단 확신이 들었다. 상대의 실수를 많이 캐치하지 못했음에도 역전승을 거둬서다. 상대의 실수를 조금만 더 캐치해낸다면 또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세트 때 랜덤 픽을 고른 상대한테 져 위기감을 느꼈다. 멘탈 타격 때문에 다음 세트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 하지만 멘탈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결국 KT를 잡을 수 있겠다 싶었다. 팀원들한테 ‘설령 이다음 세트를 져도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하던 대로만 하자’고 얘기했다.

-앞선 플레이오프 때 졌던 리브 샌박 상대로 반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리브 샌박 상대로는 정면 승부를 걸었다. 리브 샌박이 잘하는 스타일과 패턴이 있었다. 단단한 조합을 구성하고 게임을 후반으로 끌고 가서 이기는 것이다. DRX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고쳐야 하는 플레이와 맞닿아 있었다. 우린 그런 게 안 돼서 패배를 많이 쌓았다. 하지만 선발전을 준비하며 우리가 그런 부분에서 한 단계 스텝업을 이뤘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반까지 가면 이길 수 있단 생각으로 조합을 짰고, 좋은 결과를 냈다.”

-오늘 오전 공개된 ‘인벤’과의 인터뷰를 보고 잠이 확 깼다. 올해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은퇴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본인이 우승권 선수로서 경쟁력이 없다면 더는 현역 생활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나.
“선발전에서 이기고, 그 시기가 지나간 현재는 내 기분도 괜찮고 긍정적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 선발전 준비 전까지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내가 ‘아무것도 아닌’ 선수 같단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항상 롤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팀원들도 못하는 선수들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을 데리고 롤드컵 우승은커녕 선발전도 뚫지 못한다면 사실…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수로 남기보다는 여기서 (선수 생활을) 그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어떻게 이겨냈나.
“사실 이겨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에 결과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같다. 이것은 프로게이머로 살아가는 동안은 안고 가야 하는 문제다. 경기를 질 때마다 엄습하는 생각들이다. 해결하는 방법은 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으니까….”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원딜의 로망’도 언급했다. 왜 본인이 원딜의 로망으로 꼽힌다고 생각하나.
“원거리 딜러뿐만 아니라 모든 포지션이, 더 나아가 LoL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생각이다. 어떤 것이든 공격적으로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플레이들이 나오고, 그 점을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소환사의 협곡 바깥에서도 공격적·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옳은 태도라고 보나.
“그게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그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특별한 선수,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나 네이마르 주니오르를 보면 아주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예전에 어떤 축구 선수의 인터뷰를 감명 깊게 봤다. ‘상대한테 더 가까이 붙을수록 상대를 제치기가 쉽다’고 하더라. LoL도 마찬가지다. 상대한테 가까이 붙을수록 상대의 스킬 사용을 유도하기 쉽다. 그걸 마지막에 피하는 게 실력이라 생각한다. 그걸 해내는 선수가 특별한 선수다. 나도 그런 플레이를 추구한다.”

-다른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 더 정답에 가깝겠다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나.
“내 스타일로 롤드컵 우승을 해야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는 건데 아직까진 증명해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나와 다른 스타일의 선수들이 우승할 때마다 ‘사실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을 매번 한다. 실제로도 다른 선수들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내가 처음 추구했던 방향과 달라진 부분도 있다.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데뷔했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김 선수는 어떤 부분에서 성장하고, 변화했다고 보나.
“게임 내적으로는 게임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어렸을 땐 라인전을 엄청나게 중요시했다. 게임 안에서 ‘바텀’ ‘바텀’ ‘바텀’만 강조하며 이기적으로 게임을 했다. 지금은 선택지가 여러 개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어떤 것이 제일 나은 것인지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전략에 따른 손익을 따져서 콜을 세게 할지 약하게 할지 정할 줄 안다.
게임 외적인 변화도 내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 어렸을 땐 성격이 좋지 않았다. 딱 봐도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그걸 외부로 표출하진 않았다.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고쳐야 할 게 있다면 빨리 얘기한다. 좋은 사람들과만 생활했다 보니 그들의 좋은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본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선수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나.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지 않나. 팀 동료들의 장점만 닮고자 했다. ‘스코어’ (고)동빈이 형, ‘스맵’ (송)경호 형, ‘마타’ (조)세형이 형, ‘천주’ (최)천주 형, ‘하트’ (이)관형이 형, ‘이지훈’ (이)지훈이 형…. 형들한테 많은 걸 배웠다.
같이했던 동생들로부터는 동기부여를 많이 얻는다.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나. 나는 운이 좋았다. 어렸을 땐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걸 해독해줄 수 있는, 나를 잘 이끌어주는 형들과 함께했다. 지금은 동생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독기가 빠질 때마다 다시 채우고 있다.”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갈라’ 천 웨이의 걸음걸이만 봐도 느낌이 남다르다고 말한 게 인상 깊었다.
“걸음걸이란 잔무빙을 뜻한다. 패턴이 없고, 빠른 리듬감의 무빙을 나는 좋아한다. 공격 속도가 바르지 않은 초반 구간에 그런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잔무빙을 많이 하려면 클릭을 많이 해야 한다. ‘갈라’ 선수는 내가 선호하는 패턴과 횟수로 클릭하는 것 같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든다.”

-‘갈라’의 걸음걸이는 김 선수의 것과도 닮아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렇게 클릭을 광적으로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예전의 나와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어쩌면 (예전의) 나보다 더 잘하고, 클릭을 많이 할 수도 있고. 내가 선호하는 바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듯한 선수여서 볼 때마다 재밌다.”

-플레이-인 스테이지부터 롤드컵 도전에 나선다. 어떻게 대회를 준비할 계획인가.
“탈락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떨어지지만 않으면 지든, 이기든 모든 게임이 전부 경험치로 쌓일 것이다.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한두 경기를 졌을 때 분명 주변에서 많은 얘기를 듣게 되기 마련이겠지만, 우리 팀원들끼리는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더 높이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나에게 롤드컵 우승은 만화에 나오는 ‘원피스’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여전한가.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인가?’ ‘결국 (원피스를) 찾지 못하고 끝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또다시 (원피스를) 찾을 기회가 생겼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직도 롤드컵 우승은 내게 막연하고, 보물을 찾았을 때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걸 목표로 삼고 살고 있다. 꼭 찾고 싶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많은 우여곡절 끝에 팬분들과 롤드컵에서 뵙게 됐다. 프로게이머뿐 아니라 팬분들도 어떤 종류든지 간에 자신만의 시험을 거치며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에게 롤드컵은 매번 돌아오는 시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팬분들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된다. 내가 이번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게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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