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미래] 인구에 대한 철학의 빈곤

입력 2022. 9. 2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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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 해법
국민경제 위기 의식만이 작동
복잡다단한 생애사 결과 '인구'
경제주의 넘어 사회적 숙고 필요

근대 학문으로서의 인구학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시작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되는 영국 사회에서 앞으로 통제되지 않는 인구 증가가 불러올 파국을 경고하였다. 식량은 1, 2, 3, 4… 이렇게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2, 4, 8, 16…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에 따라 식량과 인구의 간극이 커지면서 결국 기근, 전쟁, 전염병 등과 같은 비극적 조절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금욕과 최저 생활수준 유지 등으로 출산력을 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구론’이 다윈의 진화론에 핵심적 영감을 주었다는 점을 봐도 ‘인구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 또 얼마나 중요한 인식 전환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인구론’은 그 시기 나타난 도시 빈곤층을 구제하려는 빈민법에 대한 반대와, 인간 이성의 영구적 발전을 꿈꿨던 개혁적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 등 그의 보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한편 동시대를 살았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구론’의 주장을 인류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노동자들이 겪는 실업, 빈곤, 굶주림은 인구 탓이 아닌 자본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한 문제는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마르크스의 인구에 관한 관점은 사회문제에 대한 계급주의적 시각과 지속적 역사 진보의 믿음을 보여준다.

맬서스와 마르크스 모두의 인구 예언들은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인구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시작한 두 거장의 인구문제 인식에는 이념과 가치가 담겨 있다. 맬서스의 주장은 시간이 지나 인구 증가로 인한 자원의 고갈과 생태학적 위협 등을 경고하는 네오 맬서스주의로, 마르크스의 비판적 시각은 인구 결정론이 갖는 기능주의적 태도에 반대하는 구성주의적 비판 등 다양한 인식과 관점들로 재등장하였다. 이러한 인구에 대한 시각들은 다시 새롭게 분화하여 서구 사회에서 저출산, 가족정책, 이민정책, 환경문제 등 인구 관련 정책들의 방향 설정에 풍성한 논의들을 제공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 저출산과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대한 경고와 위기 인식이 거의 매일 언론에 나오고 있다. 인구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책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인구정책과 논의들은 ‘인구’에 대한 어떠한 관점과 철학에 기초하고 있을까? 사실 우리는 그러한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 단지, ‘나라가 고령화로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 아이들이 더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경제’의 위기 인식만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계는 저출산 정책을 ‘여성의 출산 도구화’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문제는 남성주의가 아니라 이러한 경제주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인구정책의 근거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보면 그 목적에서부터 ‘경제성장’이 가장 먼저 강조된다. 우리는 고령화의 파장에 대해서도 노동력 부족, 경제성장률 저하, 부양비 증가로 인한 재정부담 등 경제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한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도 출산과 양육의 총비용을 줄이면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경제학적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다. 인구문제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 사회는 인구를 경제발전을 위한 하위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사회에 진출한 청년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떠한 짝을 만나 연애를 하고, 그 사람과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어떠한 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다시 둘째를 낳고 하는 개인들의 복잡다단한 생애사들이 합쳐진 총체적 결과가 ‘인구’이다. 경제적 비용과 효용의 문제로 단순 치환시킬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인구 위기에 바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이해와 철학도 성숙해져야 한다. 새로운 인구문제에 대한 전략을 담을 새로운 인구정책 기본법에는 단순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진지한 사회적 숙고가 담겨졌으면 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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