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에 이어 엔씨까지 줄줄이.. 총구멍난 K게임

곽창렬 기자 2022. 9. 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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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코로나 특수 끝나자 누적된 문제 드러난 게임업계
k게임이 흔들린다/그래픽=김의균

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일대에 말과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에는 ‘계속되는 유저(게임이용자) 기만’ ‘소통해라’는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카카오게임즈가 배급한 게임 ‘우마무스메’ 이용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다. 의인화된 말을 육성해 경마대회를 벌이는 이 게임은 일본 게임회사가 개발했는데, 한국판 게임은 일본판과 달리 게임 이용자에게 약 10만원 상당의 무료 재화를 덜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한국 이용자들을 호구로 아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행사를 기획한 박대성 우마무스메 이용자 자율협의체 부매니저(27)는 “게임 이용자들도 일종의 소비자인데, 전혀 소비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항의하기 위해 기획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모금했는데 1시간 만에 2000만원이 모였다”고 했다.

최근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작년 2월 넷마블이 배급한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 이용자들은 미국·일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 차별, 넷마블의 소통 부족 등의 이유로 트럭 시위를 벌였다. 이를 시작으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클로저스’ 등이 운영 문제를 이유로 줄줄이 트럭 시위를 겪었다. 19일 경기도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 앞에도 게임 운영이 불공정하다고 항의하는 트럭 10대가 등장했다.

게임은 이른바 ‘K콘텐츠’의 주력 산업이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해외 콘텐츠 수출액 119억2428만달러 가운데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8.7%에 이른다. 국민 10명 중 7명이 게임을 즐기고,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 영국이나 독일·프랑스보다 게임 시장이 클 만큼 국민들의 ‘게임 사랑’도 뜨겁다.

그런데 팬데믹을 계기로 폭풍 성장했던 K게임에 여러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가운데 하나인 넷마블은 올해 1분기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119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2분기에는 적자 폭이 347억원으로 커졌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1분기 매출이 7903억원, 영업이익은 2442억원을 기록했는데, 2분기에는 매출(6293억원)과 영업이익(1230억원)이 1분기보다 각각 20%, 50%가량 감소했다.

주가도 힘을 못 쓴다. 코로나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말 엔씨소프트 주가는 93만원이었고, 2021년 초에는 100만원을 뚫어냈다. 하지만 작년 말에는 64만원으로 떨어졌고, 올해 9월에는 37만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넷마블도 13만원에서 6만원대로, 컴투스는 16만원에서 8만원대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8월 상장한 크래프톤은 상장 초기 50만원에서 올해 9월에는 2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한국 게임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난 13일 카카오게임즈 사옥이 입주해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일대에서 일부 우마무스메 게임 이용자들이 마차를 동원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혁신 잃어가는 K게임

외형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게임회사들은 여전히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일본 증시에 상장돼 있는 넥슨은 201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지 9년 만인 2020년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엔씨소프트도 6089억원에서 1조7587억원으로 매출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전체 게임산업 매출 역시 2016년 10조8945억원에서 2020년 18조8855억원으로 73% 성장했다. 음악(14%)이나 방송(27%) 등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성장 속도다.

하지만 전 세계 게임시장에서 K게임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전 세계에서 넷째로 큰 모바일게임 시장이지만, 한국산 게임은 전 세계 매출액 상위 9개 게임에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왕자영요’가 나란히 1, 2위에 올랐고, 중국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개발한 ‘원신’이 3위를 차지했다. PC게임 분야에서도 한국산 게임은 스마일게이트가 2007년 출시한 FPS(1인칭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 하나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게임의 창의성과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올해의 게임상’ 명단에서도 한국 게임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거대 자본력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산 게임의 공세가 거세다. 2014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게임 수출액은 엇비슷했지만, 2020년에는 중국이 한국을 두 배가량 앞질렀다.

일러스트=양진경

◇20년째 리니지만 보인다?

2000년대 초반 탄생한 한국 게임업체들은 당시 크지 않은 규모에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작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이때 탄생한 게임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리니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이다. 한 게임업계 전문가는 “꿈을 가진 개발자들이 초롱초롱한 아이디어를 갖고 만들어낸 보물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 게임 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자 한국 게임회사들은 기존 PC를 기반으로 제작했던 게임을 모바일용으로 전환한 뒤 경쟁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게임의 특정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판매하는 대신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게임 업체가 설정한 확률에 따라 게임 이용자가 낸 금액의 가치보다 더 높거나 낮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는 구조여서 게임의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사업 모델이 성공하면서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엄청난 매출과 이익 성장을 이뤄냈지만, 결과적으로 혁신에 게을러지는 부작용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직 대형 게임업체 간부는 “비슷한 스토리와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기반한 돈벌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했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국내 게임업체의 주요 신작 가운데 11개가 기존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대형 업체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출시하는 4개의 게임 가운데 3개도 마찬가지다. 재탕·삼탕한 게임이 계속 쏟아지는 배경에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대박을 친 원작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리니지’의 경우 1998년 최초 개발된 이후 리니지 시리즈로 나온 게임이 15개가 넘는다. 리니지는 지금까지도 엔씨소프트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된 ‘라그라로크’ IP(지적재산권)로 만든 게임이 35개가 넘고, 넥슨이 제작한 ‘바람의 나라’ ‘던전앤파이터’ 등도 수십 개의 비슷한 게임이 꾸준히 제작돼 왔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게임의 스토리와 구조도 비슷하다. 가령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뛰어든다→많은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들여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킨다→악당을 무찌른다→또 다른 악당이 등장해 다시 게임이 진행된다’는 식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배틀그라운드’ ‘던전앤파이터’ ‘로스트아크’ ‘서머너즈 워’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경쟁력이 없다 보니 대부분 게임사들은 국내 게이머들을 상대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게임회사들이 집결한 판교에서 항의 시위가 빈발하는 건 게임사들의 돈줄 역할을 해온 국내 게이머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징후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서구 게임 이용자들은 ‘도박성 게임’에 거부감이 많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 모델로는 해외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확률형 아이템 게임이 최적화된 한국 시장에서 게임회사들이 악랄하고 사악하게 돈을 버니 해외 진출이나 새로운 게임 개발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게임을 잘 만들 필요도 없는 게 한국 게임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대해진 몸집에 인건비 천정부지

일부 대형 게임업체의 경우 비대해진 조직도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직원 수가 2013년 1110여 명이었는데, 올해 6월 현재 4700여 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크래프톤은 2020년 1171명에서 올해 6월에는 1700여 명으로 600여 명 늘어났다. 과거 같으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서둘러 아이디어를 채택할지 결정해 빠르게 게임을 내놨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면서 의사 결정이 느려지고, 우수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A씨는 “신작 게임 아이디어가 통과되려면 팀장·실장·본부장·CEO 4개의 결재선을 거쳐야 하는데, 팀장·실장까지 허가가 났지만 본부장이 허가하지 않아 무산된 적이 있다”며 “내가 구상했던 것과 똑같은 게임을 나중에 다른 업체가 출시해서 큰 재미를 봤다”고 했다. 그는 “조직이 커졌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예전 같으면 무난히 출시돼 빛을 볼 수 있었겠다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게임회사들이 대기업이 되면서 설립 초기의 열정과 창의성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게임업체 간부 B씨는 “김택진·김정주 회장 같은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은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게임을 개발해 낼 정도로 치열했는데, 지금 그들은 모두 관료화된 대기업의 오너나 최고위직이 됐다”며 “이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후배 개발자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이미 게임업계는 조직이 너무 커졌고,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도록 짜여 있어서 치열하게 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대형 게임사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신작 게임 출시가 예정보다 늦어지거나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도 이런 조직 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애초 신작 게임 ‘쓰론앤리버티(TL)’ 출시를 올해 하반기 목표로 했는데, 지난달 내년 상반기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게임 시장 환경이 좋지 않고, 파트너십 선정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이 발표가 나오자 주요 12개 증권사는 일제히 엔씨소프트 목표주가를 40만원대 수준으로 내려 잡았다. 이 밖에 ‘리니지W’와 ‘블레이드&소울2′의 해외 출시도 연기됐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출시한 모바일 게임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앤 소울2′는 혹평 속에 흥행에 참패했다. 넷마블이 4년 넘게 공들여 지난 7월 말 내놓은 신작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 레볼루션’도 구글 플레이 매출 1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훌쩍 커진 몸집은 인건비 증가와 실적 악화로도 이어진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게임업계는 앞다퉈 연봉 인상에 뛰어들었다. 몸집을 키우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넥슨이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올린 것을 시작으로,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 1300만원(비개발직군 1000만원), 크래프톤은 개발직군 연봉을 2000만원(비개발직군 1500만원) 인상했다. 이로 인해 국내 5대 게임사(크래프톤·엔씨소프트·넷마블 등) 직원 평균 임금은 2020년 7700만원 선에서 작년에는 지난해 약 1억2000만원(5대 게임사 기준)으로 급증했다. 급여총액도 6256억원에서 8684억원으로 38.8% 증가했다. 이로 인해 엔씨소프트의 올해 2분기 인건비는 작년보다 11% 증가한 2066억원을 기록했고, 카카오게임즈는 1분기 인건비로 작년보다 86% 오른 475억원을 썼다. 조직 인사 컨설팅 회사 콘페리의 이종해 전무는 “게임업체 간 연봉 인상 경쟁 때문에 ‘불타는 판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이제 업계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메타버스·블록체인 분야 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데다, 개발직군 직원만 올려주면 비개발직군들이 반발하다 보니 연봉을 모두 다 올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조직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 대형 게임사는 최근 국내 한 인사 컨설팅 업체에 조직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자문했다. 이 업체는 2010년대 후반 내놓은 게임이 대박을 친 후 급격히 조직이 커졌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조직이 정비돼야 하는데 조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을 중간에서 통솔할 관리자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없다 보니까 업무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직원들도 누구한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한국 게임업계가 위기를 맞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게임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데, 아직 리니지류의 게임보다 소비자가 더 좋아하는 게임이 없다는 것이다. 대형 게임업체 팀장급 직원 C씨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리니지류 게임 말고도 다양한 게임이 수없이 개발된다”며 “그럼에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게임업체 직원 D씨는 “게임 업계에는 소위 서울대 나온 인재가 수두룩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만들어도 리니지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 아직 없다”며 “결국 게임 이용자들의 취향이나 기호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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