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법 제정한 1979년처럼..들끓는 이란

김혜리 기자 2022. 9. 22. 21: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히잡 미착용 의문사'에 항의
20여곳으로 번져..최대 규모
경찰 발포로 소년 등 10명 사망
당국, SNS 차단 등 언론 통제
수그러들지 않는 시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21일(현지시간)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가 의문사 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는 이란 내 주요 20여개 도시로 확산한 상태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최근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구금됐던 한 20대 여성이 의문사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란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최소 10명이 숨졌다. 이란 정부는 시위 상황이 담긴 영상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국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BBC 등 외신은 21일(현지시간) 마흐사 아미니(22) 사망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시위가 격화하면서 현재까지 1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치안당국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16세 소년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아미니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에서 촉발된 시위는 현재 수도 테헤란과 시라즈, 케르만샤, 하마단, 타브리즈 등 주요 20개 도시로 확산한 상태다. 2019년 연료 가격 인상으로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진 이래 최대 규모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던지고 불태우는 등 아미니의 죽음을 초래한 이슬람 율법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말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21일(현지시간) 쿠르드 여성들이 20대 이란 여성인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히잡을 벗어던지고 있다. 베이루트 | AP연합뉴스

시위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국은 언론 통제에 나섰다.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이란 내에서는 전국적으로 이동통신망 접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과 인스타그램 등 애플리케이션도 차단됐다. 시위 상황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히잡 의무화’ 시작된 1979년
10만명 이상 모여 반대 시위

이번 시위로 이란 여성들을 옥죄어온 ‘히잡법’ 등 이슬람 율법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때부터 적용됐다. 당시 친서방·반이슬람 노선을 취한 팔레비 왕조에 반감을 품었던 이슬람 세력은 1979년 혁명을 일으키며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회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여성들의 대외 활동은 제한됐고, 공공장소에서의 남녀 구분은 엄격해졌다. 심지어 여성들은 경기장에서 남성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마저 금지당했다. 경기에 흥분한 남성 관중에게 욕설이나 성희롱, 성추행 등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권리를 하나둘씩 빼앗기자 격하게 저항했다. 이슬람 혁명을 주도했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79년 3월7일 직장에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자 다음날 수도 테헤란 거리에서 10만명 이상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더라도 머리카락이 보이도록 엇비슷하게 걸쳐 쓰는 등의 방식으로도 저항을 계속해 나갔다. 이에 이란 의회는 1983년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지 않은 여성은 채찍 74대를 맞도록 하는 등 처벌 수위를 강화했다. 1995년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최대 60일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까지 추가됐다.

이란 당국의 여성 복장 단속은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라는 특수경찰부대가 한다. ‘도덕경찰’이라고도 불리는 지도 순찰대는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하에 설립된 부대로,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에 걸맞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아미니 사망 사건 전에도 지도 순찰대는 과잉 대응으로 여러 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부적절한 복장’의 판단 기준이 터무니없는 데다, 체포한 여성들을 구타하는 등 폭력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한 여성은 BBC에 신고 있던 장화가 남자들이 보기엔 “너무 야할 수 있다”면서 지도 순찰대원이 자신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에게 전화해 신발을 한 켤레 갖다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그 후 나는 부적절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했고, 전과자가 됐다”고 말했다.

지도 순찰대 내에서도 단순히 여성들을 벌주기 위해 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한 지도 순찰대원은 BBC와의 익명 인터뷰에서 “(여성을) 사냥하러 나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도 순찰대의 존재 이유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면서 “하지만 단순히 여성들을 지도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왜 인파가 몰리는 곳들 위주로 근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복장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을 충분히 잡아내지 못하면 상사가 꾸짖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