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높던 펠로톤·올버즈, 월마트·아마존과 손잡은 이유

성유진 기자 2022. 9. 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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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고객에 직접 판매' 전략 포기하는 D2C 업체들

미국 운동용 자전거 업체 펠로톤은 10년 전 창업한 이후 자사 온라인몰과 매장(쇼룸)에서만 제품을 팔아왔다.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이른바 ‘D2C(Direct To Consumer)’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 회사는 실물 자전거와 함께 화상 운동 수업을 구독하는 방식을 선보이며 고객을 자사 몰로 끌어들였고, D2C 전략의 성공 사례로 주목 받았다. 그런데 지난달 펠로톤은 자전거와 자전거 액세서리, 의류 등을 앞으로는 아마존에서도 팔겠다고 선언했다. 케빈 코닐스 최고커머셜책임자(CCO)는 “우리는 소비자가 있는 곳에서 소비자를 만나길 원하며, 그 소비자는 지금 아마존에서 쇼핑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고수해온 ‘D2C only’ 전략을 일부 포기한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홈트레이닝 플랫폼 업체 펠로톤 매장. 펠로톤은 코로나 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리오프닝 이후 실적과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대대적인 사업모델 변화에 나섰다. /EPA연합

◇유통 업체로 향하는 D2C 브랜드

D2C 전략은 지난 10여 년간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과 함께 부상하며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방식이다. 중간 유통 업체에 내는 판매 수수료를 절감하고, 고객 데이터와 브랜드 파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특히 미국에선 올버즈(신발), 글로시에(화장품), 와비파커(안경), 캐스퍼(매트리스) 등 D2C 판매를 내세운 신생 업체들이 등장해 수십억달러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시장조사 업체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D2C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2016년 360억8000만달러에서 작년 1283억3000만달러까지 커졌다. 하지만 콧대 높던 D2C 업체들이 최근 성장의 한계에 부닥치면서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 업체와 손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친환경 운동화로 유명한 올버즈는 지난 6월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 14곳에 입점했다. 최근엔 노드스트롬 온라인 몰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앞서 5월에는 유럽 패션 전자상거래 플랫폼 잘란도, 미국 스포츠용품 판매 업체 딕스스포팅굿즈와도 유통 파트너십을 맺었다. 조이 즈윌링거 최고경영자(CEO)는 “다른 유통 업체를 통한 판매는 소비자 사이에서 인지도와 신뢰성을 높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설립돼 작년 18억달러(약 2조5000억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미국 화장품 회사 글로시에 역시 내년부터 화장품 편집 매장 세포라 매장과 온라인몰에서 자사 제품을 팔기로 했다. 미국·캐나다 지역에만 수천개 매장을 보유한 세포라를 통해 매출과 인지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자사 온라인 몰과 직영 매장 판매를 강화해온 D2C 전략의 대표 주자 나이키도 최근 도매 유통 업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존 도나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콘퍼런스콜에서 “소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이 원할 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얻기를 원한다”며 “우리는 도매 파트너와 계속해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나이키 제품을 공급하는 유통 업체 수는 줄었지만, 남아 있는 업체들과의 관계는 더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가 대형 유통 업체들과 손잡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경기 침체와 무관치 않다. 올 들어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사람들이 비필수품 소비를 줄이기 시작하자 더 많은 잠재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판매를 기반으로 하는 D2C 특성상 사람들이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예컨대 펠로톤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홈트레이닝 붐이 가라앉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분기(4~6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0% 가까이 감소하자 펠로톤은 올해 들어서만 직원 3600명을 해고했다. 주가도 고점 대비 90% 넘게 폭락한 상태다. 뉴욕타임스의 테크 분야 칼럼니스트인 쉬라 오비데는 “고객이 제품을 찾고 구매하도록 하는 데 (유통 업체) 매장 판매는 일종의 지름길”이라며 “사람들은 이미 (물건을 사기 위해) 월마트나 아마존, 가구점에 가 있고, 그렇지 않다면 소비자를 매장 안으로 유인하는 게 유통 업체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싸진 새 고객 확보 비용

디지털 마케팅으로 새 고객을 확보하는 비용이 치솟은 것도 유통 업체와 손잡게 된 배경이다. D2C 전문 업체들은 주로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이용자 데이터를 토대로 타깃(고객 맞춤형) 광고를 해왔는데, 광고 가격이 최근 몇 년간 급등했다. 한 광고주는 “미국에서 페이스북 이용자 1000명에게 도달하는 비용은 지난 2년 새 6달러에서 18달러까지 뛰었다”고 CNBC에 말했다. 작년 애플이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을 강화하면서 타깃 광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려워졌다.

D2C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 시들해지고 있다. 글로벌 홍보 대행사 디퓨전이 미국 성인 118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D2C 브랜드 제품을 한 번 이상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작년 79%에서 올해 65%로 감소했다. D2C 스타트업으로 몰리던 투자 열기도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셀바벤처스의 매니징 파트너인 키바 디키슨은 “D2C 브랜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서 지난 몇 년간 흔했던 거액의 투자 자금 유치가 앞으로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수익성 측면에서 보면 D2C 전략이 무조건 옳지는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BMO캐피털마켓(캐나다 몬트리올은행 자회사) 애널리스트인 시메온 시겔은 “D2C를 확대한 브랜드를 보면 제품당 수익은 증가하지만 도매 판매 포기로 인한 손실이 이런 수익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반면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 업체는 D2C 브랜드 입점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새로운 고객군을 끌어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Z세대에서 유명한 온라인 스킨케어 브랜드 버블과 면도기 브랜드 빌리를 올해 진열대에 새로 선보였다. 비건 식품 브랜드 오윈은 월마트 판매 지점을 기존 1500개에서 지난달 4500개로 확대했다. 미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월마트는 차별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해 젊은 고객과 고소득 고객 등을 끌어들일 수 있고, D2C 브랜드는 월마트의 유통망을 활용해 빠른 매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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