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불발' 최악 피했지만..강제동원 등 현안 '진전' 없었다
북핵엔 “심각한 우려 공유”
양국 관계엔 “소통 계속”
원칙적 입장만 재확인 그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약식 정상회담 형태로 마주 앉았다. 회담 확정 여부로 진통이 계속됐으나 만남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은 피했다.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 문제 등 현안을 두고 가시적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뉴욕의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30분 동안 만나 협력 강화 방안 등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동의 결과를 크게 세 가지로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북핵 공동대응,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 자유민주주의 등 서로 공유하는 가치를 위한 국제사회와의 연대·협력 등이 논의됐다.
상호 관심사들이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결론은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북핵 문제를 두고는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일관계를 두고는 양국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외교당국 간, 정상 간 소통을 계속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도 “양국 정상은 현안을 해결하고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필요성을 공유하고,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일·한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에 일치했다”고 밝혔다.
한·일관계 개선의 최대 변수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간 일본은 한국 정부에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두 나라의 회담 결과 발표에도 강제동원 문제는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간접적으로 이를 담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이 집중하고 있는 현안은 강제징용 문제”라며 회담에서 이 논의가 일부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개선 방안으로 “그랜드바겐(일괄타결) 방식”을 언급했으나 이날 약식 회담에선 양측 기본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첫발” 의미 불구
‘저자세 논란’ 여론 악화 부담
대통령실은 2년9개월 만에 한·일 정상이 양자 회담 형식으로 만났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양국의 경색 국면이 장기화해온 만큼 만남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일 간 여러 갈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양 정상이 만나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첫발’ 이상의 의미를 도출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면서 만만찮은 과제들이 그대로 남았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는 양국의 인식차가 여전하다. 일본 정부가 이날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쌓아온 한·일 우호 협력 관계의 기반을 토대’로 한다고 강조한 것은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정 등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양국과 국민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내세우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며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간 것 아니냐는 등 악화된 여론도 부담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공약한 한·일관계 개선과 ‘그랜드바겐’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작업도 이후 숙제로 넘어갔다.
뉴욕 |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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