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과는커녕 사고만 속출한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났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예고한 것과 달리 결과는 초라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으로 시작한 나흘간의 정상외교는 실속은 없이 사고와 논란으로 점철됐다. 특히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고 나서 한 ‘막말’은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의심케 했다.
대통령실은 2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 미국, 일본 정상을 잇따라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주일 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두 만남 모두 제대로 된 회담이 아니었다. 막판까지 성사 여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매달린 기색이 역력했다. 형식을 갖추지 못한 정상 간 만남이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과 통화스와프 등 현안을 논의하려던 바이든과의 회담은 허망했다. 두 사람은 앉아서 대화하지도 못했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영국 왕실 리셉션, 글로벌펀드 회의, 미국 대통령 리셉션 참석 기회를 활용해 ‘환담’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글로벌펀드 회의장 만남은 통역 포함 48초간 대화한 게 전부다. 바이든 대통령의 빠듯한 일정 때문이라고 했지만, 영국 등 다른 나라 정상들과는 회담을 했다. 대통령실은 “만난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실무진이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현안을 두 정상이 짧게라도 확인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멀리까지 가서 정상회담을 할 이유 자체가 없다.
한·일 회담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다른 행사장을 찾아가 만나는 형식을 취했다. 한국은 30분간의 이 만남을 ‘약식회담’이라고 했지만, 일본은 ‘간담(마음 터놓고 얘기함)’이라고 규정했다. 두 정상이 2년9개월 만에 만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논의하며 관계 개선의 첫발을 뗀 점은 평가한다. 하지만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감안하면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섣불리 회담 성사를 발표했다가 정상회담을 구걸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명백한 실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윤 대통령의 언행이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회의장을 나서며 참모들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우방국 정상과 의회에 대한 중대한 결례이자 일국의 정상으로서 품격에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가까운 우방국과의 외교조차 이렇게 허술하다면, 급변하는 주변 정세와 북핵 문제 등은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책임자 문책과 함께 외교 기조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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