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 '신뢰 회복 방안' 묻자 '월급' 얘기 나온 이유

김고은 기자 2022. 9. 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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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는 오지 않고 떠나는" 몰락해가는 산업에서 뉴스 품질 향상과 신뢰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토론회 오기 전에 주변 기자들에게 저널리즘 신뢰 회복 방안에 대해 물었다. 불가능하다는 다수 의견을 빼면 일단 월급부터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라 되게 진지하게 하는 얘기였다. 기자들이 직업과 회사에 대해서 애정이 사라지고 분노가 가득한데 무슨 신뢰 회복이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론에 입문한 지 10년쯤 된 저연차 현장 기자”가 전한 냉정한 현실 진단에 장내 분위기가 일순 무거워졌다. 탄식도 들렸다. 이 발언은 다름 아닌 ‘한국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현실적 제안과 실천’을 논하는 세미나 자리에서 나왔다.

‘좋은 저널리즘 구하기’를 대주제로 지난 4월과 6월 릴레이 세미나를 개최해온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는 이를 결산하는 성격의 마지막 3차 세미나를 지난 21일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었다. 좋은 저널리즘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법 제도와 미디어 환경, 뉴스 생산 측면에서 살펴보고 저널리즘 행위자와 이해관계자를 대표하는 여섯 명의 패널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가 지난 21일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한국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현실적 제안과 실천'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장은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노력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한 뒤 언론 윤리가 현장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특히 데스크를 대상으로 한 언론 윤리 교육 강화를 주장했고,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기사 수정 이력제 확대, 뉴스룸 투명성 강화 등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현장 기자’를 대표해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전현진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이란 산업 자체가 몰락하고 있다는데, 과연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상황이 여의치 않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료 기자들이 “월급이나 올려달라”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좋은 기사, 윤리적인 기사 써도 보상 기대할 수 없어”

전 기자는 먼저 “‘저널리즘 신뢰 회복’이라고 하는데, 우리 언론이 신뢰받은 적 있었던가”라고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신뢰란 말 자체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반대돼도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인지, 나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좋은 곳이라 믿을 수 있다는 건지, 신뢰가 무엇인지에 따라 신뢰받는 언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만약 후자의 의미라면 잘나가는 정치 유튜버도 신뢰받는 언론이라 할 수 있으므로 “어떤 신뢰를 받아야 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껏 상품을 만들고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의 신뢰라 하더라도 현장 기자 입장에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전 기자는 말했다. 그는 “고객(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포털 사이트 댓글난인데, 기사를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은 많은 분들이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욕설을 하거나 부모님의 안부를 묻거나, 기사가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욕한다”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신뢰를 주기 위한 의욕도 꺾인다. 몇 달 취재해서 쓴 기사도 독자들은 짧은 시간에 공짜로 보는데, 그 기사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좋은 저널리즘, 신뢰받는 저널리즘의 구현이 언론 시장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란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윤리 가이드라인 번역에 참여했다. 뉴욕타임스에선 그런 신뢰가 진정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언론 지형에서 신뢰를 자산으로서의 중요한 가치로 끌어올린다면 생존이 가능할까 한편으로 의문이 들었다”며 “선정적이고 평판이나 신뢰를 하락시키는 기사들은 어떻게 보면 즉각적인 효과나 보상을 제공해 주는데, 윤리적인 기자들은 그런 보상이 없다는 점에서 인센티브적인 측면도 시장에서의 생존이란 관점에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인재는 오지 않고, 있던 인재도 떠나고

신뢰받는 저널리즘도 이를 실천하는 기자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 많은 젊은 기자들이 언론을 떠나면서 언론계에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전 기자는 “좋은 보도를 욕심내는 기자들이 많지만 매일 회의감과 불안함을 느낀다”며 “저연차 현장 기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탈출을 꿈꾸고 신입 기자 지망생은 절반 이상 줄어서 예전엔 학교 전체를 빌려 입사 시험을 봤다면 이젠 강당 하나만 빌려도 될 정도”라고 전했다.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특별위원회가 지난 21일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한국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현실적 제안과 실천'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공들여 쓴 기사는 독자들에게 제대로 읽히거나 평가받지 못하고, 윤리적인 기사나 그런 언론이 시장에서 성과를 내거나 보상을 얻지도 못하는 구조다. 전 기자는 “나름 박봉에 좋은 콘텐츠를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현실적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노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었단 자부심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 굳이 내가 왜 노력해서 만들어야 하지?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전 기자는 “현장 기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이런 상황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상황,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나 기자들의 노동 측면에서도 저널리즘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기사 수정 이력제’ 확대 등 실천 방안도 제시돼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 오세욱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투명성의 구현이 신뢰 회복의 시작”이라고 강조하며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오 위원은 “하나의 기사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데, 뉴스룸의 의사결정 과정을 과감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보이지 않으니 더 의심하는 거다. 플랫폼 기업에만 투명성을 요구하지 말고 언론사부터 실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 위원은 또 현재 인터넷신문 시사위크가 시행 중인 ‘기사 수정 이력제’가 언론 전반에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현재 언론사들은 기사 수정 시간 등을 기사 페이지에 표기하고 있지만, 최종 시간만 표기될 뿐 몇 번의 수정을 거쳤고 어떠한 내용이 붙여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특정 사안 발생 시 언론사들은 속보 전쟁으로 우선 기사를 송고한 뒤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하고 있는데, 일단 발행되면 관련 내용이 다른 언론사들에 복제되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관련 부분만 수정하고 해당 언론사는 수정을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면책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부분이 수정됐는지 확인이 불가능해 문제가 된 내용은 추후 확인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에 발행된 기사에 수정 이력을 공개하도록 한다면 언론사들이 기사 발행 전 사실 확인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정책적으로 기사 수정 이력제를 법제화하면 언론사들이 강력히 반발할 게 뻔하다. 그보다는 인센티브 방식을 통해 수정 이력 공개를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오 위원은 말했다.

독자 대표로 참석한 김선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학생은 “우리 언론이 여태껏 다루지 않았던 가치들에 집중하고 정치·사회·경제 뉴스도 더 공정성을 갖길 소망한다”고 했다. 김씨는 “과연 지금 레거시 미디어들이 2030들이 정말 주목하고 고민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물으며 “많은 매체에서 새로운 유튜브 콘텐츠라든지 짧게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런 플랫폼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에 좀 더 집중을 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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