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한겨레 입력 2022. 9. 22. 19:10 수정 2022. 9. 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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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중계를 보면서, '그분이 아끼던 개들은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생각했다.

지금 남겨진 개는 총 4마리인데, 그중에도 웰시코기가 둘이다.

여왕의 개 취향은 토실토실한 엉덩이에 장난이 특기인 웰시코기 종이었던 모양이다.

개와 눈이 마주치면, 착각이겠지만, 문득 내가 그 개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개가 나를 알고 있는 듯 여겨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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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브리턴 리비에르(Briton Rivière), <연민>, 1877, 캔버스에 유채, 121.7×101.5㎝, 개인 소장, 출처: wikiart.org

[크리틱]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중계를 보면서, ‘그분이 아끼던 개들은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생각했다. 여왕은 1944년 열여덟번째 생일 때 수전이라는 웰시코기 종의 강아지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여왕의 개가 된 수전은 새끼를 낳아 대대로 서른 마리 넘는 후손을 여왕에게 선사했고, 2018년 수전의 마지막 후손이 죽었다고 한다. 지금 남겨진 개는 총 4마리인데, 그중에도 웰시코기가 둘이다. 여왕의 개 취향은 토실토실한 엉덩이에 장난이 특기인 웰시코기 종이었던 모양이다.

개의 평균 수명은 15년 남짓에 불과하므로, 5배 이상 오래 사는 사람은 함께 살던 반려견을 몇차례나 떠나보내게 된다. 단짝처럼 곁에 두고 일상을 나누던 개와 사별하는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개를 들여놓기 망설여진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여럿 봤다. 하지만, 연로해지면 걱정은 어느새 역전된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동물을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자기 먼저 가면 어쩌나 해서 애처롭단다.

개는 표정이 풍부한 동물이다. 눈빛뿐 아니라 몸짓의 표정도 있다.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주인의 말투와 태도, 그리고 동작의 의미도 자기 나름대로 잘 해석하는 편이다. 사람도 개와 함께 지내다 보면 점점 비언어 소통에 능해져 개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알아듣는다.

김훈이 쓴 소설 <개>에는 보리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글의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나온다. 김훈도 보리가 어떤 뜻으로 ‘컹컹’ 하고 짖었는지, 왜 귀를 내리고 몸을 바닥에 착 붙였는지 통역사처럼 독자에게 전달한다.

소설의 내용은 두겹인데, 한편으로는 어렸던 보리가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앞다리와 뒷다리를 점차 능숙하게 써가며 삶을 깨치는 개의 성장 이야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리의 눈에 비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리는 동네 개 흰순이의 향긋한 냄새에 마음이 들뜨는가 하면, 거리의 깡패 같은 사나운 개 악돌이에게 물리고 돌아와 맞짱 뜰 준비를 하기도 한다. 나머지 시간은 주인집 식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관찰하는데, 가끔은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하고,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개는 인간과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언제까지나 말 없는 목격자일 뿐, 눈앞에 벌어진 인간사에 개입할 방도는 없다.

개와 눈이 마주치면, 착각이겠지만, 문득 내가 그 개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개가 나를 알고 있는 듯 여겨지곤 한다. 내가 개를 선택하고, 개에게 이름을 붙여줬듯이, 개가 나를 선택하고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같이 있을 때 놀아주는 이는 내가 아니라 개다. 이 정도쯤 되면, 나도 개 중독자로 분류되거나, 아니면 모든 생명체에 순수한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신봉자로 의심받을 만하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개 신봉자만 있으랴. 동료 교수 중에는 난초를 모시는 집사도 있다. 연구실에 들여놓은 난초의 향에 날마다 감동하고, 난초가 꽃을 피운 단순한 자연현상에 탄복해 술을 사는가 하면,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난초와 대화를 나누곤 한다. 오래전 퇴계 이황도 매화를 ‘매형’이라 부르며, 죽기 직전에도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평소 곁에서 당신을 바라봐주고 당신이 지켜봐야 하는 어떤 존재가 있는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관없이, 그것으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을 때나 먼 여행을 떠날 때 신경이 쓰이는가? 아무것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 홀가분한 인생도 부럽지만, 나는 신경 쓸 대상이 있는 쪽을 선호한다. 여왕은 왕실에서의 형식에 맞추느라 온기를 느끼기 어려운 삶을 살았겠지만, 나름 따스하게 보냈을 것임에 틀림없다. 서른 마리가 넘는 웰시코기들이 장난을 걸어줬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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