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시선 아닌 내가 본 '당당한 나'를 그리다

한겨레 입력 2022. 9. 22. 19:10 수정 2022. 9. 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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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 부상을 당하고 곡예사 일을 그만뒀다.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은 예쁘다.

<자화상> 이나 <가족 초상화> 나 <푸른 방> 같은 작품 속 발라동이 그린 발라동을 보면, 예쁜 모습도 고달픈 모습도 아니다.

아무려나 발라동이 그린 <위트릴로의 초상화> 역시 미화하는 시선도 슬퍼하는 시선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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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나는 역사다] 쉬잔 발라동(1865~1938)

르누아르, <머리 땋는 소녀>, 1887년. 위키미디어 코먼스

①[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 부상을 당하고 곡예사 일을 그만뒀다. 먹고살기 위해 그림 모델이 됐다. 화가 르누아르의 모델을 섰고 그와 사귀었다.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은 예쁘다. 그저 예쁘게만 그렸다. 쉬잔 발라동이 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르누아르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로트레크, <숙취(발라동의 초상)>, 1888년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②[로트레크가 그린 발라동] 화가 로트레크의 모델도 섰다. 그림 좋다며 격려하고 쉬잔 발라동이라는 예명을 지어준 사람도 로트레크였다. 자신도 장애가 있어 발라동의 슬픔을 잘 이해했던 걸까? 문희영의 글처럼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여인과 달리, 로트레크의 그림 속에서 (쉬잔 발라동은) 고단한 삶을 그대로 안고 있다.” 로트레크는 발라동을 고달픈 모습으로 그렸다. 그러나 고달프게만 그렸다. 발라동이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만 로트레크는 거절했다.

쉬잔 발라동, <자화상>, 1898. 위키피디아

③[발라동이 그린 발라동] 발라동은 힘찬 선을 썼다. 파스텔과 유화처럼 까다로운 재료도 독학으로 하나하나 익혀 나갔다. <자화상>이나 <가족 초상화>나 <푸른 방> 같은 작품 속 발라동이 그린 발라동을 보면, 예쁜 모습도 고달픈 모습도 아니다.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여성이다.

④[드가의 격려] 드가는 그때 이미 성공한 화가였다. 로트레크의 소개로 발라동의 작품을 보고는 멋진 말로 발라동을 격려했다. “너도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겠구나.” 발라동은 과연 화가로 성공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 계급 여성이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미술가가 됐다. 쉬잔 발라동이 태어난 날이 1865년 9월23일이다.

쉬잔 발라동, <모리스 위트릴로의 초상>, 1921. 위키피디아

⑤[발라동이 그린 위트릴로]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역시 유명한 화가다. 쉬잔 발라동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우리는 모른다. 위트릴로의 아버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위트릴로는 어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알코올중독으로 한동안 고생한다. “발라동이 아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말이 한때 있었지만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발라동이 남자 화가였다면 그런 말을 들었을까. 아무려나 발라동이 그린 <위트릴로의 초상화> 역시 미화하는 시선도 슬퍼하는 시선도 아니다. 위트릴로는 1927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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