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흐르는대로 바흐를 연주할뿐.. '나의 행복'을 나누리라
7세때 처음 마주한 바흐의 음악세계 매료
콩쿠르 우승뒤 '바흐 스페셜리스트' 수식어
獨 함부르크 음대서 37년간 가르치다 은퇴
허영심 없는 천성에 국내선 인지도 낮지만
40년 함께한 파트너이자 아내와 음반작업도
5년만에 내한, 서울·인천서 23·24·27일 무대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예브게니 코롤리오프(1949~)가 반가운 내한 소식을 전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바흐 스페셜리스트' '바흐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그 별칭에 방점을 찍은 건 작곡가 리게티(1923~2006)가 그의 음반을 언급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단 하나의 음반만 들을 수 있다면 코롤리오프의 바흐를 선택할 것이다.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그의 음악과 함께 있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코롤리오프는 러시아 피아노 악파의 창시자인 겐리흐 네이가우스(1888~1964)와 마리아 유디나(1899~1970) 등 당대 최고 명성의 피아니스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바흐의 음악에 빠지게 된 건 그가 7세 때 처음 배웠던 바흐의 c단조 전주곡 덕분이다. 그리고 그즈음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글렌 굴드(1932~1982)의 바흐 연주를 듣고 바흐의 음악에 더욱 매료되었다. "굴드는 '푸가의 기법'에서 세 곡을 연주했는데, 대위의 명료성, 즉 다성음악을 명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대단한 피아니스트였다. 늘 굴드를 존경한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19세 때인 1968년 바흐 음악 해석에 있어 권위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73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바흐가 있고, 모던 피아노로 연주하는 바흐가 있다면 그는 후자에서 빛을 발휘한다. 그러한 명성과 뛰어난 연주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좀처럼 국내 음악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외식(外飾)하기 싫어하는 그의 천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세상에 무언가를 전해야겠다는 어떠한 욕심도 없다. 단지 연주하고자 하는 필요를 느끼고 그 욕구에 따라 연주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1978년 함부르크에 거점을 두고 2015년까지 함부르크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한 그는 평소 그의 제자들에게도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행복이다. 음악가는 관객과 음악으로 더불어 행복을 나누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이번 내한은 바쁜 나날들이다. 덕분에 그가 연주하는 바흐의 협주곡과 독주곡의 정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9월 23일과 24일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바흐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들을 선보이고, 27일 인천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협주곡에는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안나 빈니츠카야가 함께 하기도 한다.
-2017년 첫 내한 이후, 5년 만에 방문하는 한국이다.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첫 내한 이후 5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에 더 젊어지진 않았지만, 건강하니 신에게 감사드린다.(웃음)"
-1978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 함부르크 음대에서 37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이었기에,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치고 은퇴를 하고 나니 더 여유 시간이 많아졌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은 바뀌지 않았지만, 자유로워졌다."
-지난 인터뷰에서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행복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제자들에게 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가르친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을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들, 자연,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계승'과 '보존'의 영역에서 동시대성을 안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가령 막스 리히터의 '사계'(재작곡 버전), 바이올리니스트 로라 마소토가 협연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마테오 잔페라리 재작곡)는 디지털 악기의 소리를 입고 다시 태어난 고전 음악들이다. 당신은 새로움과 전통 계승 중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두는가?
"나의 선호도를 간단하게 요거트에 비유할 수 있다. 딸기 맛, 복숭아 맛 요거트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 요거트를 선호한다.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시대 악기로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 작곡되었을 당시의 환경과 감각을 잘 살리고 있는데, 당신은 모던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유가 궁금하다.
"모던 피아노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옳은가,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논쟁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바흐의 음악은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 중요한 걸 해나간다면, 다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음악 따라 걷다보니 닿은 곳
-레이블 타쳇(Tacet)을 통해 꾸준히 코롤리오프 시리즈를 제목으로 음반을 발매해오고 있다. 바흐 음반이 명반으로 손꼽히지만, 쇼팽·베토벤·슈베르트·스트라빈스키 등 다양한 시대의 폭을 아우른다.
"타쳇의 프로듀서 안드레아스 스프리어 제안으로 시작한 시리즈이다. 1990년 바흐 푸가의 기법 BWV1080을 시리즈 첫 음반으로 녹음했다. 뒤이어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두 번째로 발표했다. 그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하다 보니 어느 덧 23번째 시리즈까지 음반이 나왔다."
-특히 당신의 바흐 음반은 지금도 많은 사랑받고 있고, 대중은 당신을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부른다.
"나 스스로 바흐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되고 싶은 열망도 없고. 다만 연주를 할 뿐이다."
-피아니스트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는 당신의 아내이자 오랜 음악적 파트너이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같은 학교 출신이고 40여 년의 세월 동안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나누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음반, 네 손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바흐의 합창곡 음반 등은 아내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지난 2019년 발매한 바흐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음반 발매로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와의 공동작업에 정점을 찍었다. 도중에 음악적 갈등을 겪은 적은 없는가?
"물론 아내와 나는 음악적인 문제들을 의논한다. 하지만, 곧장 공통된 결론을 가지고 돌아온다. 함께 한 세월은 무시할 수 없다. 두 작곡가의 작품 외에도 라벨, 슈베르트 등 중요한 듀오 작품들을 음반으로 남겼지만, 여전히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이 많다."
-이번 내한에서는 안나 빈니츠카야가 함께 참여해 서울시향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빈니츠카야는 오랫동안 나의 제자였다. 뛰어나고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지금은 가장 친한 동료가 되었고, 특히 바흐 음악에 대한 사랑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바흐의 음악을 한 아름 안고 두 번째 내한
-한국 교향악단과는 처음 호흡을 맞춘다. 국내 음악계도 당신의 내한에 들뜬 분위기이다.
"나 역시 서울시향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매우 수준 높은 단원들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원과 세 명의 협연자가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이고, 음악의 순서 배치에 어떠한 중점을 두었는지 궁금하다.
"수년 전에, 밀라노에서 바흐의 프로그램으로 연주해줄 것을 요청 받았다. 그리고 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연주를 했었다. 어찌 보면 음반 작업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번 연주의 곡 순서는 아내와 빈니츠카야와 함께 의논하여서 정하였다."
-지난 내한 당시 한 인터뷰에서 바흐의 작품으로 내한한 이유에 대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음악"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내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바로크 협주곡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바흐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들의 향연이다.
"그동안 많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흐의 협주곡들을 연주하며 즐거웠다. 그래서 한국 관객에게도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나의 순수한 즐거움이다"
-이번 아트센터 인천에서 선보이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신의 대표 연주곡이자 지난 첫 내한 당시 대전에서도 연주했던 프로그램이다. 바흐의 음악은 영원한 생명수로도 비유되곤 하는데, 늘 새로운 것이 악보에서 보이고,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찾은 새로운 해석이 있는가?
"나는 해석에 몰입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을 연주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론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당신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연주하는 동안 내가 연주하며 느끼는 것을 관객도 동일하게 느끼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감각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공연들과 일정들이 예정되어 있는가?
"같은 바흐 레퍼토리로 독일에서 연주가 있고, 에센, 루드비히샤펜, 베를린 등에서 듀오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다. 삶은 계속 흘러간다."
글=월간객석 임원빈 기자·사진=아트센터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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