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배불리는 물적·인적분할..뿔난 소액주주 뭉쳤다

이정훈 2022. 9. 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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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하이텍·풍산, 유망 사업 물적분할
소액주주들 연대모임 만들어 반대 나서
디비(DB)하이텍과 풍산의 소액주주 연대 모임이 22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지방법원 앞에서 물적분할 반대를 외치고 있다. 소액주주 제공

대기업들이 총수 등 대주주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소액주주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무릅쓰며 회사 쪼개기(분할)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소액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정부도 같은 취지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대기업들은 오히려 새 규제 시행 전에 회사 분할 목표를 이루자며 서두르는 모습이다.

22일 디비(DB)하이텍과 풍산 소액주주들은 경기 부천시 부천지방법원에 모여 디비하이텍의 물적분할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은 디비하이텍 소액주주들이 분할 반대를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 제기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소송 기일이었다. 디비하이텍은 반도체 공급망 혼돈 속에 몸값이 높아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나 설계(팹리스)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부를 쪼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부를 물적분할로 떼내 존속법인의 100% 자회사로 둘 계획이다.

신설법인 주식 못 받는 소액주주…물적분할 땐 주가 하락세

회사를 모회사와 자회사로 나눠도 당장은 기업가치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주가에는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적분할과 달리 물적분할 때는 기존 주주들이 신설법인 주식을 받지 못하고, 신설법인이 상장해 신규 자본 유입에 따른 효과를 기존 주주들은 누리기 힘들다. 이 때문에 물적분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순간 주가가 바로 하락세를 보이곤 했다.

풍산도 마찬가지다. 풍산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실적 증가가 예상되는 방위산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풍산디펜스(가칭)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지난 7일 공시했다. 공시 이후 주가는 주가지수 하락과 맞물리며 3만원대에서 2만원대로 주저앉았다. 풍산은 향후 신설법인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제3자 배정 등 다른 방식으로 신규 자본을 들여오면 상장 시와 마찬가지로 모회사 지분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회사 소액주주들은 연대 모임을 만들어 물적분할에 반대하고 나섰다.

인적분할, 대주주 지배력 키우는 ‘자사주의 마법’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인적분할 사례도 있다.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16일 각각 현대백화점홀딩스(신설법인)와 현대백화점(존속법인), 현대지에프홀딩스(존속)와 현대그린푸드(신설)로 인적분할한다고 공시했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기존 두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6.6%와 10.6%다.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설립 시 정지선 회장이 최대주주(17.1%)인 현대백화점홀딩스, 동생 정교선 부회장이 최대주주(23.8%)인 현대지에프홀딩스는 보유 자회사 지분율이 주식 교환 과정에서 자사주 지분만큼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자사주 매입이 곧 소각을 뜻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자사주를 보유하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인 ‘자사주의 마법’이 쓰인다. 기존 주식처럼 자사주에도 신설법인 주식이 배정되고, 향후 주식 교환 과정에서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에서 이를 제어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림그룹 엔에스(NS)쇼핑의 인적분할은 공공재로 벌어들인 자산이 인적분할로 대주주에게 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엔에스쇼핑은 지난 4월 엔에스쇼핑(존속)과 엔에스지주(신설)로 인적분할(0.23:0.77 비율)한다고 공시했고, 8월에는 인적분할을 의결하기 위한 주주총회 개최를 9월에서 10월로 미룬다고 재공시했다. 공공재인 방송으로 거둔 자산이 엔에스쇼핑이 아닌 엔에스지주로 쏠려있는 게 주목된다. 더욱이 향후 김흥국 회장이 최대주주(21.1%)인 하림지주와 합병할 경우, 대주주가 지배하는 회사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인적분할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물적분할은 향후 상장하거나 안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투자금을 유치할 경우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인적분할도 자사주가 있다면 대주주 이익을 위해 쓰이는 구조”라며 “이는 한국의 주식 시장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요소”라고 말했다. 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증권사의 분석가는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모두 자세히 살펴보면 회사 성장이나 주주 환원이 아니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차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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