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외관이 깨진 검찰과 '김건희 특검법' / 박용현

박용현 2022. 9.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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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넥타이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박용현 | 논설위원

수사·사법기관은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원칙은 이제 상식이 됐다. 검찰에 관한 원칙을 정리한 유럽연합의 로마헌장은 제6조에 “검사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며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검찰을 떠나는 인사를 하며 “검사의 일은 ‘what it is’(실제) 못지않게 ‘what it looks’(외관)도 중요한 영역”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검찰의 외관은 어떤가. 정권이 바뀐 뒤 검찰 조직이 재편된 과정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최측근 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고 검찰총장 공석 상태를 유지하며 검찰 인사를 모두 끝냈다. 핵심 요직에 ‘윤석열 라인’ 검사들이 줄줄이 배치됐다. ‘검찰 직할 통치’라는 표현의 등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 지점에서, 적어도 정치적 사건에 관한 한 공정한 검찰이라는 외관은 이미 깨진 것이다.

이후 구체적 사건들에 대한 수사 상황은 공정성 외관의 깊은 균열을 재확인해줄 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부인 등에 대한 수사는 거침없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 등에 대한 수사의 지체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15일 이재명 대표 수사가 정치탄압이라는 야당 비판에 대해 “범죄 수사를 받던 사람이 다수당의 대표가 됐다고 해서 죄가 있더라도 덮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국민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없는 죄를 덮어씌우면 안 된다는 것은 제가 그것을 당해봤기 때문에 제일 잘 안다”고도 했다. 자신이 당한 수사에는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남이 당하는 수사에는 ‘있는 죄’라고 단정하는 말본새부터 법무부 장관으로서 적절치 않았다. 이후 한 장관은 “만약에”라는 단서를 달아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19일 대정부질문 답변). 하지만 공정성의 외관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는 여전하다.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해선 저 정도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은 있었다.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온 한 장관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안 하니 특검을 하자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친정권 검찰로 알려진 사람들이 특수부를 동원해 2년간 (수사)한 사안”이라고 받았다. 도통 맥락이 닿지 않는 답변이다. 전 정부의 ‘친정권 검찰’이 수사했으니 현 정부의 ‘친정권 검찰’은 봐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일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기에는 지지부진하다가 그가 퇴임한 뒤 급물살을 탔고 권오수 전 회장 등 관련자들이 대거 구속기소됐다. 검찰총장 부인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사건을 소극적으로 수사하는 게 정의인지, 적극 수사해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게 정의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그동안 검찰 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들은 김 여사의 연루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오수 전 회장이 기소된 뒤 9개월째 김 여사에 대한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게 정상인가. 더구나 한 장관이 틈만 나면 ‘엄단하겠다’고 강조하는 증권·금융범죄 사건 아닌가.

이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 문제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 소임을 맡겨주시면 이 부분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를 직접 지휘해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인데, 지금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이 사건 지휘에서 배제시키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게 유지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이 사건을 직접 지휘할 수 있으려면 추 전 장관의 ‘검찰총장 배제’ 수사지휘를 한동훈 장관이 또 다른 수사지휘권 행사를 통해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한 장관은 이전 장관들의 수사지휘권 행사로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더 이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장관 주장대로라면, 훼손된 검찰의 독립성을 원상회복하는 수사지휘권 행사도 하지 않겠다는 게 된다. 앞뒤가 맞지 않는 형식논리다. 비유하자면, 청소를 깨끗이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이미 엎질러진 물은 치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이 공정의 외관에 생긴 균열을 더 키우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을 향한 불신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다가 지난 7일 사직한 여환섭 전 법무연수원장은 검찰 내부망에 올린 사직 인사에서 “현재 정치적 상황과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닥칠 위기는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고 조직의 존폐와 관련돼 있을 수 있다”며 “더 이상 정치쟁점화된 사건 속에 빠져들어 조직 전체가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사건에 대해 획기적인 투명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기소의 매 단계마다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동의를 받고 조사 과정에도 위원회가 참관하도록 하는 시민참여형 방안을 제시했는데, 진지하게 토론해볼 문제다.

하지만 외관의 공정이 깨진 상태를 치료할 새로운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지금에서는, 현존하는 제도적 대안은 특검뿐이다.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 찬성 의견이 60% 전후로 나온다. 검찰의 공정성 외관이 훼손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정치적·논리적 귀결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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