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여왕의 관을 왜 8명이 들었을까?

김현수 인턴 2022. 9. 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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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19일 윈저성을 향할 때 이를 짊어진 군인 8명의 어깨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짓눌렸다.

당시 그의 관을 들었던 링컨 퍼킨스는 잠시 계단에 멈췄을 때 관이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의 어깨에서 미끄러질 뻔했다고 BBC에 전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하인과 연인 관계였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납을 사용하는 관습은 에드워드가 사망했을 때 또는 그다음 세기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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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관 안쪽 납으로 연결…영국 군주 시신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함
에드워드 1세 사망 후 시작된 것으로 추정…오래된 왕실 전통

[런던=AP/뉴시스] 2022년 9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의 국장을 마친 후 찰스 3세와 왕실 가족들이 여왕의 관 뒤를 따라 걷고 있다. 2022.09.22.


【서울=뉴시스】김현수 인턴 기자 =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19일 윈저성을 향할 때 이를 짊어진 군인 8명의 어깨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짓눌렸다. 이외에도 운구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6명인 것에 비해 8명이었던 이유는 실제 무게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는 관 안쪽이 납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납을 사용하는 전통은 몇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을 떠난 군주들의 시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역사학 연구 교수인 줄리 앤 타데오는 관에 있는 납은 습기를 막아 시신을 더 오래 보존하게 해주고 시신에서 나오는 냄새나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카타팔크(관대)를 끌던 말들이 놀라서 그녀의 관이 거리로 쏟아질 뻔한 사건 이후로 군인들이 죽은 영국 군주들의 관을 운구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앞서 영국에서 마지막 국장을 진행한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도 납으로 연결된 관에 놓였다.

당시 그의 관을 들었던 링컨 퍼킨스는 잠시 계단에 멈췄을 때 관이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의 어깨에서 미끄러질 뻔했다고 BBC에 전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뒤에서 받쳐주던 두 사람에게 관이 쏠렸을 때 퍼킨스는 처칠의 시신에 대고 큰 소리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잘 돌보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퍼킨스는 "그가 어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를 떨어뜨렸으면 정말 아찔했을 것이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여왕의 관은 19일 저녁 윈저성의 조지 6세 기념 예배당 금고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남편인 필립 공 곁에서 영면했다.

영국 왕족 시신 보존 수단은 고대 이집트 고위층에서 사용되었던 방법을 연상시키는데 그들도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방에 두어 완벽하게 보존했다. 고대 부유한 이집트인들은 보석, 조각품 등을 포함한 소지품 은닉처와 함께 묻혔던 반면, 엘리자베스 2세 곁에는 웨일스의 금으로 만든 결혼반지와 진주 귀걸이 한 쌍 밖에 없었다.

이는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알려진 여왕이 그녀의 선조들보다도 더 적은 소지품과 함께 묻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데오 교수에 의하면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의 가운과 그의 손을 본떠서 만든 깁스, 그리고 생전에 아꼈던 하인의 머리카락과 사진과 함께 묻혔다고 밝혀졌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하인과 연인 관계였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약 3000개의 다이아몬드와 수십 개의 다른 보석으로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여왕의 보주, 홀, 왕관은 그녀의 관 꼭대기에 놓여있었다가 그녀의 장례식 제단에 놓였다.

관에 납을 사용하는 것은 오래된 왕실 전통이라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고고학 연구소의 마이크 파커 피어슨 교수가 말했다. 1307년에 사망한 에드워드 1세의 방부 처리된 시체는 대리석 석관에 매우 잘 보존된 상태로 1774년에 발견됐다. 그는 납을 사용하는 관습은 에드워드가 사망했을 때 또는 그다음 세기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어슨 교수는 이전 왕들은 방부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1087년에 사망한 윌리엄 1세의 시신은 너무 심하게 부패되어 성직자들이 그의 몸집에 비해 작은 돌관에 그를 안치하려 했을 때 부풀어 오른 복부가 폭발했다. 악취가 너무 진동하여 조문객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실제로 앵글로-노르만 영국 연대기를 쓴 베니딕도회 수도사 오르데릭 비탈리스의 글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teressakim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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