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책임보험액 5천억원에 불과..중대사고 손해액의 0.1%도 안돼

김정수 2022. 9. 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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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와기후]

하늘에서 바라 본 고리원전. 연합뉴스

국회가 지난해 4월 원자력손해배상법을 고쳐 원전 사고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손해배상 책임한도를 3억SDR(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약 5387억원)에서 9억SDR(약 1조6천억원)로 높였으나 정부가 시행령에 규정된 배상조치액을 그대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이 올해 배상조치액 확보를 위한 보험료와 공탁 비용 등으로 1천억원 이상을 덜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수원은 원전 사고 손해배상을 위한 배상조치액 3억SDR 확보 비용으로 모두 210억원을 썼다. 이 가운데 156억1천만원은 코리안리 등 12개 손해보험사로 구성된 원자력보험 풀에 책임보험료로, 나머지 53억9천만원은 정부에 보상계약료로 지불했다. 보상계약료는 책임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정상적 원전 운전 중 사고가 발생해 한수원이 직접 배상하느라 입은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받는 일종의 보험료다.

정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한수원은 올해 초 배상조치액이 9억SDR로 인상될 경우 책임보험료와 보상계약료, 공탁금 등을 합해 모두 약 1334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배상조치액이 변동없이 3억SDR로 유지되면서 연말까지 약 223억원만 지출하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가 원전 사업자의 배상 책임한도를 높여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법 개정 취지를 무시하고 시행령을 고치지 않아 한수원에 올해 배상조치액 확보 비용 1100억원 가량을 줄여 준 셈이다.

SDR은 IMF 회원국들이 외환위기 등에 처할 때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권리로 흔히 특별인출권이라고 불린다. 통화바스켓은 달러화, 엔화, 유로화, 파운드화, 위안화 등 5개 통화로 구성돼 있다. 편입 비율은 미국 달러(41.73%), 유로화(30.93%), 위안화(10.92%), 엔화(8.33%), 파운드화(8.09%) 순이다.

정 의원이 제시한 해외 사례를 보면 한수원의 손해배상 배상조치액 3억SDR(약 5387억원)은 독일의 25억유로(약 3조4715억원)의 6분의1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13억2천만 유로(약 1조8330억원), 일본의 1200억엔(약 1조1660억원) 등과 견줘도 절반에도 못 미친다.

3억SDR은 한국전력이 2018년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서 추정한 중대사고 때의 평균 손해배상액 596조원의 0.1%도 안 되는 규모다. 이 금액으로는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배상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원자력손해배상법은 손해배상 규모가 3억SDR을 넘어설 경우에는 정부가 원조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원조 규모에 대한 제한 규정은 없다. 결국 정부가 한수원에 사실상 무한대의 원전사고 손해배상 보험금을 보장해주는 보험사 역할을 하도록 한 셈이다.

한수원이 지난해 지출한 배상조치액 확보 비용 210억원을 같은 해 원자력 전기 판매량(1504억5700만㎾h)에 고루 나누면 1㎾h당 약 0.14원 꼴이다.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했을 지난해 연평균 원자력 전기 정산단가(56.1원/㎾h)의 약 0.25%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가 개정된 법 취지에 맞춰 올해 배상조치액도 올렸다면 올해 정산단가에서 보험료 비중은 0.7%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도 중대사고 평균 손해배상액 추정치 596조원의 0.3%도 안 되는 점을 고려해 배상조치액을 더 현실화하면 원자력 발전 비용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원자력 전기가 싼 데는 원전 사고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싼 보험료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정 의원은 “원전 인근 인구밀도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원전 중대사고가 발생할 경우,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발생한 배상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액이 예상되는데도 현행 원자력 손해배상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원자력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해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원전 안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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