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주간'을 맞아 생각해 본 '청년정책'이 가야할 길

입력 2022. 9. 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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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청년정책조정위원(전국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장)

최근 대학 친구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이별한 이유는 ‘다름’으로 생긴 의사소통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본인은 나름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이 하는 노력만큼 상대가 맞추려하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한다. 그 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버렸고, 둘은 냉전 상태로 있다가 이별했다고 말했다.

내 MBTI가 ‘T’인 만큼 나는 친구의 이별이 안타깝기는 하나, 평범한 대학 연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서 말한 친구의 이야기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MBTI는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로, 그중 T는 진실과 사실에 기반을 두는 이성적인 사고형이라고 분류된다.

“헤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너무 여자친구를 ‘마주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서로 줄다리기하듯이 내 생각과 행동을 뺏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만약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고,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걔가 보고 있는 세상의 풍경을 옆에서 바라보았다면 ‘정말’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마주 앉지 말고, 나란히 옆에 앉아보자
 
친구의 메시지에 담긴 비유의 적절성을 떠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히 와 닿았다. 서로 보는 관점이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완연히 이해하기 위해 자기의 고정된 시각을 조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상호이해의 시작’이라고 하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친구의 회고는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정부에게도 필요한 자세다. 정부가 청년을 위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청년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청년을 마주 본 채, 젊을 때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지금껏 축적해온 데이터와 전문성은 참고만 한 채, 현재의 청년을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개념이 모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의 하나는 여과 없이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옳고 그름, 바람직함의 여부를 떠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첫 번째다. 대개 선배 세대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 ‘판단’하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이 쌓아 올린 가치와 깨달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후배 세대 ‘그 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판단’을 제거해야 한다.

청년에 대한 판단 근거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다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심하고, 쉽게 포기하며,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올까? 그 이유는 ‘옛날’에는 끈끈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세대는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는 것인가? 아니다.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이 달랐다.

현대 청년들이 태어났을 시기는 경제성장 이후로 눈 떠보니 집이 있었고, 끼니를 챙길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대부분 의식주를 보장받았고, 의무교육 또한 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사회가 정의한 성공 아래에 ‘최적화’를 추구하는 환경에 놓였다.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이동 동선부터 시작해서, 대입·인간관계·진로 계획·취업·결혼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사회는 최적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서 사고할 틈 없이 선택된 것을 소화하라는 것만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존재하는 선진 모델이 있을 때 유효할 수 있다. 즉, 이 방식은 과거의 경험에 입각하여 선배 세대들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다. 반면, 과거에 비해 지금의 우리나라의 위상, 세계관점에서의 역할, 경제 수준 모든 것이 다르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주도국가가 되어 ‘K-시리즈’를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청년들은 사회에 진입하며 정반대의 개성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카멜레온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청년을 위한 변화에는 마침표가 필요하다
 
최근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일자리정책연구 PM을 맡으며 ‘마이데이터 기반 Non-stop혁신 지원 서비스’, ‘교육취업자금 조달을 위한 마중물 제도 신설’ 등을 제언했었다. 그만큼 본문 내용 외에도 아직 일자리, 주거, 남녀, 문화, 지역 균형, 고등교육 등 보다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는 나 외의 다른 청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청년의 생각으로 관점이 달라질 때, 비로소 정책 수혜·대상자들의 니즈를 보다 분명히 파악하고 설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나오는 쿠르트 레빈의 ‘해동-혼란-재동결’ 모델을 소개한다. 이 모델은 변화는 해동에서 시작되며 여기에서 해동은 ‘끝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방식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청년의 의견에 대한 선입견, 보여주기식 행사들과 정책발표회, 일회성에 그치는 청년 소재 활용을 멈추고, 이제는 청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시야를 공유하자. 청년과 마주 보지 말고, 옆에 나란히 서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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