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새로운 직업관 '조용히 그만두기(Quiet quitting)'

2022. 9. 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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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굉장한 파급력을 가진 플랫폼이다. 최근 한 20대 직장인이 틱톡에 올린 영상 하나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당신이 MZ세대라면 충분히 공감했을 문장. 바로 ‘조용히 그만두기(Quietquitting)’다. 충성을 강요하던 ‘허슬(hustle)’, 밤을 중시했던 ‘워라밸’ 등의 트렌드를 잇는 핫 키워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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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과 욜로, 파이어족 잇는 다음 트렌드

현대사회에서 ‘일과 생활’은 언제나 연계되어 있는,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분명 그 관계의 저울은 시대 및 세대에 따라 균형을 달리해왔다. 과거에는 언제나 일, 그러니까 직장에서의 삶이 더 우선이었다. 업무에 충실하고, 직급 관계에 충성하며 열심히 일하면 시쳇말로 ‘출세’라는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일반 사원에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그리고 임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올라가면 당연히 월급도 오르고, 저축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부모님 세대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일이 더 우선이었다. 모두를 일반화시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나의 삶’보다는 일하면서 얻는 성공이 곧 내 삶인 것처럼 여겨왔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런 풍토는 필자를 위시한 X세대라 일컬어지는 범주까지 줄곧 이어져 왔던 것 같다. 이른바 ‘허슬(Hustle)’ 문화라 불리는 라이프스타일이 그 세대의 트렌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노오력’ 정도를 뜻하는 허슬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종용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종사자의 무한한 열정을 요구한다. 수많은 조직이 오랫동안 이걸 일종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근로자를 부려 왔다. 여전히 이를 캠페인화하는 곳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와 세대가 변하며 허슬 문화는 일종의 ‘착취’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중심이 밀레니얼과 Z, 즉 MZ세대로 전이되면서 허슬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무지의 산물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선 자발적 퇴사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를 모토로 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그러니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일종의 무브먼트였다. 과다한 업무가 퇴근 후의 삶을 해친다는 게 주요한 취지였다. 혹자는 업무 시간 외 수당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돈도 벌면서 생활을 지키려 하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2018년 7월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워라밸 트렌드의 정책적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워라밸이라는 단어 내부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컸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내 삶도 윤택하게 만들자는 게 이 무브먼트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쉽게 말해 노후대책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욜로(Yolo)’라는 키워드가 워라밸과 함께 대두되었고,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아가자’라는 크나큰 유혹을 파급시켰다. 트렌드로 새롭게 떠오른 욜로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일파만파 번졌다. 해외 여행이 급속도로 유행했고, 비싸고 좋은 레스토랑에 인파가 운집했다. 다른 소비재 산업에서도 욜로는 꽤 많은 소비를 촉진하는 새로운 풍토가 되었다. 이러다 보니 미래 설계는 안중에 없는 듯 보였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트렌드가 부각되었다. 허슬과 워라밸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파이어족(Fire)’ 트렌드가 바로 그것. 허슬 문화 속에서 인류는 끊임없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졌고, 욜로를 등에 업은 워라밸은 허슬과 달리 자본 축적의 문제를 간과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파이어족을 욕망하는 MZ세대는 과거처럼 하나의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메인 직업 이외의 또 다른 수익 창출 창구를 꾸준히 탐색했다. 베이비 부머 시대의 부모 세대가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스스로 착취당하기를 선택했다면, 파이어족을 자처하는 새로운 세대는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이 모든 게 ‘빨리 벌어 빨리 쉬자’라는 명분 하에 있는 삶의 형태였다. 얼른 경제적 자립 조건(이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을 갖추고 노후를 젊을 때부터 즐기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삶이라는 건 참 다이내믹하다.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든 것을 단절시킨 팬데믹이 발생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기존과 완전히 다른 삶의 규범을 형성했고, 한 공간에 모여서 하던 업무가 재택이라는 수사를 획득하며 일상으로 전이되었다. 재택 근무는 MZ세대에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업무와 생활을 완전한 독립 개체로 받아들이던 이 세대에게 재택 근무는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내 생활인 듯한데 완전히 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잠옷을 입고 일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자체를 즐기고, 이제는 재택 근무를 더 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재택은 많은 이들에게 되려 불편을 야기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팬데믹이 이끈 ‘Quiet quitting’

팬데믹은 일과 생활의 간극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제적 불황도 발생시켰다. 많은 영역에서 고용의 기회가 사라지기도 했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젊은 세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암호화폐, 주식 시장 등 다양한 투자 활로가 대폭 확장되면서 누군가는 (파이어족이 될 수 있을 만큼)떼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허슬 문화로 돌아가야 할 만큼)손해를 보았다. 현대적 삶의 영속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자본의 문제가 부메랑처럼 다시금 회귀하며 요즘 젊은 세대는 많은 것을 꿈꾸기도, 포기하기도 해야 하는 갈팡질팡, 오락가락 해야 하는 삶에 처했다. 어찌됐든 일은 해야 하는데, 부모님들처럼 죽을 둥 살 둥 매달리기는 싫어졌다. 돈을 벌어 소비를 맘껏 하고 싶은데, 그 돈을 위해 허슬 문화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하며 받은 월급을 쪼개 저축하고, 그걸로 결혼도 하고 집도 사야 한다는 명제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이야기일 뿐이다. 아니 시대적 컨텍스트는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쥐꼬리만큼의 월급으로 저축해봐야 1년에 고급스러운 한 끼 식사비 정도의 이자가 붙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또 다른 결단의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SNS 플랫폼 틱톡에 콘텐츠 하나가 올라왔다. 아, 여기에서 틱톡이 사건의 시발점이라는 것 역시 꽤나 중요하다. 틱톡은 새로운 세대에게 인기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틱톡 계정 중 20대 직장인 ‘zaidleppelin’이 업로드한 영상은 현재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뒤흔든 발단이었다. 저녁 지하철에 크로스 백을 메고 앉아있는 한 청춘의 숏폼 영상 위로 아로새겨진 하나의 문장, ‘조용히 그만두기(Quiet quitting)’가 그것이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일정 부분 오해했다. 직관적으로는, 회사에 일절 언급 없이 무단으로 퇴사하는 것인가? 왜 그런 일들 있지 않던가. 직장 상사에게 어떤 식으로든 비난, 비판 등을 받았을 때 말이다. “아, 그냥 관둘까?” 이런 마음. 나 역시 일개 직장인으로서 하루에도 열두 번 때려 칠까 하면서도 심호흡 한 번 하고 진정할 때가 있으니까. 아무튼 조용히 그만두기는 결코 그런 ‘욱’하는 마음에서 도출되는 행위가 아니다. 여기에서 조용히 그만두기란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 그러니까 퇴근과 동시에 일과 관련되어 구동되는 머리 속 회로를 차단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MZ세대가 현 시대에 던지는 일종의 선언이자 결연한 의지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조용히 그만두기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일단 직장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태도다. 동시에 직장에서 부과된 일을 그 이상으로 해내야 한다는 (구시대적)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걸 핵심으로 하는 심리적 자세인 거다. 굳이 퇴사하지 않아도, 사무실 밖에는 스스로의 인생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걸 영위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일하는 걸 말하기도 한다. 앞서 이 문장을 선언문이라고 표현했듯, 이 두 개의 단어 속에는 현 세대의 노동 관념이 명확하게 내재되어 있다. 필자는 조용히 그만두기에 이르기까지 이미 일과 생활에 관련된 일종의 트렌드 흐름을 짚어낸 바 있다. 그 속에서 중요하면서도 또 조용히 그만두기와 연관되어 말할 수 있는 게 워라밸이다. 이는 오로지 일과 삶을 엄격히 구분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일에도 방점을 두는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조용히 그만두기는 궤를 좀 달리 한다. 조금 더 개인의 인생에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외관상 직장 내 업무 종사자이지만, 굳이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는 걸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입사 시 내게 주어진 업무 역할 이외의 성과를 내거나 (허슬 문화 시대처럼)일과 나를 동일시하며 영혼을 바치는 열정 따위와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개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2022년 8월21일자 『워싱턴 포스트』 온라인에 따르면 “조용히 그만두기는 직원 이탈이라는 오래된 개념에 상반된 새로운 용어다. 현 세대는 전례 없는 번아웃의 순간에 이르고 있다. 조용히 그만두기는 2021년 (미국 기준)매월 평균 400만 명이 직장을 관두었던 ‘위대한 사직(Great resignation)’을 잇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동시에 “조용히 그만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MZ세대가 경쟁적 노동환경 속에서 일과 일상의 균형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필요한 것은 세대 간 격차를 이해하는 것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오래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직장에서는 ‘주인 의식’이라는 명제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아마 많은 직장들이 그러할 것이라 추측되는데, 이 말은 ‘회사에 충성심을 가지라’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용히 그만두기를 추앙하는 MZ세대에게 이 명제는 그냥 실소하고 넘길 유머처럼 남겨진다. “내가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이냐”라는 게 그들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회사라는 곳은 서로 간의 필요에 따라 맺어진 대등한 계약 관계일 뿐이다. 여전히 계약서 등에 표기되는 갑과 을의 관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과 직원이 대등하기에 공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동시에 불합리한 것에 대한 직접적 요구도 빈번하다. 그래서 새로운 인류로 인식해야만 하는 새로운 세대는 과거 세대처럼 자기 삶을 희생하며 회사에 모든 걸 바치지 않는다. 땡 하면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자기 일만큼은 다 했다는 전제 하에서다. 과거 조직 문화에서는 상급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팀원 혹은 부하 직원들 역시 먼저 퇴근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현 세대는 무조건 ‘칼퇴근’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욕해서도 나무라서도 안 된다. 모든 분야를 주도하는 현 세대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MZ세대 지식 근로자가 업무 환경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조용히 그만두기는 MZ세대 직업관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세대가 달라지면 그들의 관념 역시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익히 많은 미디어를 통해 이 전 세대와 작금의 세대가 판이하게 다른 사고 및 사유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해왔다. 그러니까 조용히 그만두기는 갑자기 튀어나와 현재를 이끄는 트렌드가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정확히는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가 경제 구성원의 일원으로 편입된 시점부터 직장에 대한, 또 경제 관념에 대한 인식론적 변화가 폭발적으로 발생해왔다. 필자 나이 또래는 대부분 기업 속에서 팀장 혹은 그와 유사한 직급에 자리하고 있다. 그 위치는 조직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 급에 속한다. 필자 역시 주변에서 세대 간 사유 차이에 따른 갈등을 종종 보아왔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갈등이 있기도 했다. 갈등 완화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기업을 포함한 구 세대가 다름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랫동안 조직 내에 만연해 왔던, 일종의 남성적, 가부장적, 군대적 조직 시스템은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기만 할 뿐이다. 조용히 그만두기가 왜 갑작스레 트렌디한 용어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급부로 조용히 그만두기의 반대 주장도 존재한다. 9월1일자 『워싱턴 포스트』 온라인에는 ‘조용히 그만두기에 따르는 조용히 해고하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업로드되었다. 이 기사에는 조용히 그만두기가 일종의 업무 태만으로 비쳐진다면, 회사 역시 패널티를 받지 않으면서 ‘조용히 해고하기’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물론 이와 같은 대응은 꽤 미숙하게 보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조용히 그만두기가 트렌드로 급부상한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간의 이해다. 세대 간 격차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분명 그 조직은 쉽게 붕괴될 것이 명확하다. 조용히 그만두기는 이걸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주요한 화두이자 담론임에 틀림없다.

[글 이주영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47호 (22.09.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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