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대학살 '킬링필드' 주범, 종신형 최종 확정

김예슬 기자 2022. 9. 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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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킬링필드'의 주범 중 마지막 생존자인 키우 삼판 전 캄보디아 국가주석(91)이 최종적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범재판소(ECCC) 최고법정은 킬링필드의 주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키우 삼판의 항소를 기각했다.

키우 삼판은 지난 2018년 11월 반(反)인륜범죄 등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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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루주 정권 지도부 마지막 생존자
집단학살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는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왼쪽)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킬링필드'의 주범 중 마지막 생존자인 키우 삼판 전 캄보디아 국가주석(91)이 최종적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범재판소(ECCC) 최고법정은 킬링필드의 주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키우 삼판의 항소를 기각했다.

키우 삼판은 지난 2018년 11월 반(反)인륜범죄 등 혐의로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캄보디아 내 베트남계 소수민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반대 세력을 처형하는 등 대량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170만 명 가량이 처형됐고,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이 축출될 때까지 캄보디아 인구의 약 25%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2만 개가 넘는 집단 매장지가 발굴됐으며, 이 매장지를 이른바 킬링필드라고 부른다.

크메르루주 지도부는 학살의 시작은 '인구 정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 키우 삼판 역시 지난해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베트남의 침략에 맞서 독립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주석으로서 책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ECCC 대법원장 콩 스림은 "키우 삼판은 가장 비극적이고 재앙적인 시기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며 "크메르루주 정권하에서 민간인들은 기본적 자유를 박탈당했고, 극도의 잔혹한 행위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대량 살상, 고문, 폭력, 박해, 강제 결혼, 강제 노동, 실종 및 기타 비인간적 대우가 만연했다"고 덧붙였다.

킬링필드 범죄를 주도한 크메르루주 정권의 1인자 폴 포트는 재판이 열리기 전인 199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폴 포트의 오른팔로 불린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은 키우 삼판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지난 2019년 숨졌다.

이와 별개로 키우 삼판과 누온 체아는 집권 당시 강제 이주와 반대 세력 처형, 학살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14년 8월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항소했으나 2016년 11월 종신형이 확정됐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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