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화순 '백신 공장 옆 오리 공장'의 교훈

김명지 기자 입력 2022. 9.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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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 공장이 철수 논란에 휩싸였다.

화순군이 백신공장 인근에 유치한 식품가공업체 하림의 오리고기 가공 공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화순에 녹십자 백신 공장이 들어선 것부터가 코미디였다.

GSK는 국내 투자 계획을 접고 싱가포르로 갔고, 그 화순 공장 부지에 녹십자 백신 공장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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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2012년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 공장이 철수 논란에 휩싸였다. 화순군이 백신공장 인근에 유치한 식품가공업체 하림의 오리고기 가공 공장 때문이었다. 녹십자는 하림 공장이 들어오면 백신 공장을 옮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독감 백신은 유정란을 제조 원료로 쓴다. 하림의 육가공 공장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녹십자는 독감 생산 자체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국 하림이 공장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례는 ‘바이오’를 앞세운 지자체의 ‘만용’과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도 거론된다. 하지만 애초에 화순에 녹십자 백신 공장이 들어선 것부터가 코미디였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05년 경기도는 벨기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백신 공장을 유치해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려고 했다. 화성에 6만㎡의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 계획까지 합의했는데, 정부가 전남 화순에 GSK 공장 설립을 요구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GSK는 국내 투자 계획을 접고 싱가포르로 갔고, 그 화순 공장 부지에 녹십자 백신 공장이 들어섰다. 화순을 ‘미래생물의약분야 메카’로 조성하겠다고 해놓고 육가공 공장을 유치한 것이다. 산업계를 고려하지 않은 관(官) 중심 사고와, 토지를 매각해 수익을 내려는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욕심이 불러온 촌극이었다. 지금도 화순에 있는 제약 바이오 기업은 녹십자가 유일하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첨단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출범한 대구와 오송의 첨단의료복합단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동화 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 서 있다. 백년초 농축액과 아로니아즙을 만드는 공장들이다. 제약 바이오와 무관해 보이지만 지자체는 ‘자연에서 만든 제품이니 바이오 분야 아니냐’고 강변한다. 대구와 오송에 첨복 단지가 설립된 지 이제 10년이 됐는데 이렇다 할 실적도 없다. 오송에는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같은 굵직한 국책기관이 수십여개가 함께 입주해 있는데도 이렇다.

반면 GSK가 둥지를 튼 싱가포르에는 글로벌 제약 바이오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대형 제약사인 사노피는 지난 4월 4억 3400만 달러(약 5664억원)을 투자해 백신을 생산하는 첨단 공장을 착공했다. 위탁개발생산(CDMO)기업인 중국 우시바이오도 최근 싱가포르에 14억 달러(약 1조 8270억원) 연구개발(R&D) 센터 설립 계획을 내놨다. 일본 다케다 제약과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사무실을 열었다.

산업 클러스터 사업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하물며 제약⋅바이오 산업은 호흡이 길어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산업의 생태계를 이끌어 갈 행정가라면 장기 비전을 갖고 꾸준히 목적지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행정가들은 정권에 휘둘려 목적을 잃고, 이해 집단에 휘둘려 엉뚱한 곳으로 간다. 그렇게 대형 사업들은 고꾸라지고 그때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은 날아가 버린다.

싱가포르 정부가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을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대구와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첫 삽을 뜬 것도 10년 전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첨단 제조업으로 바이오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장기 산업 발전계획을 마련해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정부가 백신 공장 옆 오리공장 같은 코미디를 되풀이하지는 않기 바란다. 대구와 오송이 다시 10년을 잃지 않기 위해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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