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서 사용자로

서울문화사 2022. 9. 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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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유효한 단어일까. 독자에서 구독자로, 구독자에서 사용자로 콘텐츠를 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변하고 있다. 과거 콘텐츠는 읽을거리나 볼거리였다면, 이제는 내 취향을 대변하는 브랜드이자, 상품이자, 서비스가 됐다. 콘텐츠는 솔루션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앱, SNS, 유튜브도 콘텐츠의 목적은 문제 해결에 있다. 독자가 사용자로 변하는 시대, 잡지와 같은 전통 콘텐츠 매체들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얼마 전 지인이 ‘후원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간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후원하는 마음으로 음반을 산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대환란기에 영화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잡지도 그럴까? 문득 생각했다.

나는 잡지를 좋아한다. 10대에는 <핫뮤직> <스크린>을 교과서보다 열심히 읽었고, <윙크> <미르> 같은 순정만화 잡지도 매달 사 모았다. 20대의 나는 <키노>와 <씨네21> <이매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리뷰>와 <오늘예감> <샘이 깊은 물>을 보면서 한국형 잡지를 선망했다. 1990년대 발행된 <엘르> <보그> <피가로> 같은 온갖 패션 잡지 역시 한국과 패션, 문화와 지식 등에 대해 색다른 경험을 줬다. 물론 요즘도 잡지를 좋아한다. 사진, 미술, 영화, 테크 등 전문 분야의 잡지를 꾸준히 사서 본다.

사실 잡지의 위기는 오래된 주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출현을 꼽을 것이다. 손에 쥔 전화기가 사실상 소형 컴퓨터의 역할을 맡으면서 잡지를 대체할 미디어가 대거 등장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잡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특히 최근 5년 동안 사실상 거의 모든 인쇄 매체가 스마트폰과 경쟁했고, 대다수는 실패했다. 스마트폰이 만든 경쟁 체제는 경계가 없다.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종이 책은 유튜브와 경쟁하고, 유튜브는 소셜 미디어와 경쟁하고, 소셜 미디어는 게임과 경쟁한다. 이 와중에 그동안 독자, 시청자, 플레이어, 청취자 등으로 특화되어 불리던 고객 집단은 ‘사용자’라는 정체성으로 통합된다.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이 게임은 사용자의 한정된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내가 기억하는 잡지의 전성기, 혹은 내가 잡지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는데, 여기서 그저 애도할 것인가? 아니다, 어떤 잡지가 사라지는 반면 새로운 잡지가 탄생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잡지를 에워싼 환경 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은 잡지를 재정의해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잡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정의할 것이다. 누군가는 잡지를 ‘잡스러운 지식의 집합체’로, 누군가는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 취향의 서포터’로, 누군가는 ‘전문 지식의 창고’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잡지란 광고판이다.

사실 그 어떤 산업이든 생태계는 대체로 생산- 유통-판매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중 유통의 변화는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을 이끌었다. 맞다. 화물열차와 트럭 때문이다. 철로가 생기고 고속도로가 만들어졌을 때 시장은 한정된 지역을 벗어나고 수익도 늘었다. 한편에선 라디오와 텔레비전도 그랬다. 라디오 전파가 유럽 대륙과 북미 대륙을 연결하자 글로벌 시장이 탄생했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광고가 더욱 중요해졌다. 출판, 음악, 영화, 방송 등 지역 미디어가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내가 빠져 지냈던 <엘르> <보그> 같은 패션지들도 이런 구조에서 반세기 이상 사업을 확장하고 규모를 키우고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잡지는 고급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인쇄 매체였고, 그로 인해 여러 분야의 고급 기사가 실릴 수 있었다. 이 구조는 20세기 말까지 유지되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달라진 건 2000년 이후다. 인터넷이 모든 걸 바꿨다. 음성, 영상, 이미지, 텍스트를 모두 디지털 포맷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이 새로운 통신망은 거의 모든 산업 구조에 영향을 줬다.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유통이다. 출판, 음악, 영화, 방송 등은 디지털 포맷으로 변경되어 물리적 한계 없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로든 공유되고, 책, 음반, 비디오 등은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가 되어 유통되었다.

인터넷 혁명은 사실상 유통 혁명이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대규모의 트래픽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걸 검색 엔진, 포털이라고 부르다가 이제는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이후에 모든 게 변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 정확히는 인터넷 혁명으로 인한 유통 구조의 변화로 축소된 광고 시장이 잡지의 위기라는 현상의 본질이다. 잡지의 위기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환경, 수익 구조, 독자, 그리고 감수성.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펀딩이나 구독 모델은 오히려 파편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독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광고가 사라진 상황에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일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요즘 독자들은 호기심이 아니라 해결책에 먼저 반응한다. 오직 기획과 결과가 독자를 움직인다. 이런 맥락에서 환경, 수익 구조, 독자, 그리고 감수성이 연결된다. 그중 기획이 아마도 가장 중요할 것이다. 왜일까?

나는 기획을 ‘마음이 머무는 곳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마음? 최근의 비즈니스는 ‘마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후원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가는 일’이나 여기저기서 ‘팬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획, ‘마음이 머무는 곳을 만드는 일’에는 독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과 수익 모델을 사려 깊게 고민하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아름다운 것, 멋진 것, 동경하는 것만을 보여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잡지의 위기’라는 문제로 돌아가자. 애초에 잡지가 광고판의 기능을 했을 때, 잡지에 실린 내용은 타깃 독자들이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싣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광고판 기능을 상실하자, 잡지는 양과 속도가 아니라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것 또한 관심을 끄는 일이다. 그렇다면 새삼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과연 ‘독자’는 누구인가? 자의든 타의든 완전한 개인화로 질주하는 2020년의 미디어 환경에서 1900년대 초반에나 등장한 ‘대중’이란 개념은 여전히 유효할까?

언제나 필요한 건 ‘문제의 재정의’라고 믿는다. 잡지의 문제는 곧 ‘독자’다. 독자를 재정의하고, 나아가 ‘새로운 독자’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독자는 과연 발견되는 존재일까, 아니면 발명해야 하는 존재일까. 이런 질문으로 잡지의 위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EDITOR : 조진혁 | WORDS : 차우진(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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